[윤 해 록] 역사의 흔적에서 오늘의 위기를 본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 아래 눈이 시리도록 평화로운 일상이 보이네.
지구촌이라는 거대한 네트워크에 묶여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저 풍요롭고 안온한 만남이요 편안한 호흡이다.
개인의 미시사는 오늘도 한치의 빈틈도 없이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재깍재깍 시곗바늘 마냥 흘러간다.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라는 존재 앞에 선 우리 인간은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운명과 숙명에 순응하면서 하루를 살아간다.
서울은 역사의 흔적을 느끼기에 안성맞춤인 도시다. 물론 시간이 있어야 한다.
아침에 눈 뜨면 일터로 달려가야 하는 직장인이나 자영업자에게는 그냥 그림의 떡이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바빠서 못 느끼는 서울의 본모습을 의외로 서울을 처음 본 이방인들의 놀라움에서 확인하기도 한다. 첫째, 도심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강 한강이요 둘째, 도심에서 언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북한산과 관악산 청계산 등 이름 있는 산뿐만 아니라 어느 동네에도 마을 뒷동산 정도는 있는 산수 인프라에 외국인들은 경탄한다.
오백 년이 넘는 동안 수많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살아남아 도심을 지키고 있는 고궁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의 흔적이 오늘날 이룩한 현대 빌딩들과 콜라보를 이루어 존재하고 있는 모습이 지금 우리가 살고 보고 있는 서울의 경이로운 모습이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살았던 나에게 서울은 나의 본적지이면서도 타향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남산 어린이 회관과 북악스카이웨이를 보면서 첫 대면을 한 이래로 대학 때 동해안을 거쳐 설악산 무전여행을 하다가 여비가 떨어져 도착한 서울에서 사촌형님으로부터 용돈을 받아 신나게 서울관광을 하기도 했다.
본적이 서울이어서 최전방 입대를 위해 서울병력이 모이는 강남 뉴코아 백화점에 가기 위해 입대 하루 전 올라온 서울은 폭설이 내려 도시 전체가 새하얀 설국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올라간 효창공원과 남산은 인적이 드문 도심 속의 원시를 느꼈고 그 이후 직장으로 혹은 일로 정착한 서울에서의 일상은 한가한 느낌의 시대는 가고 팍팍한 생존경쟁의 연속이었다.
이렇듯 같은 공간 다른 느낌은 인간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직면하는 현실이다. 그만큼 우리는 다층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똑같은 풍경을 보고도 해석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날 다층세상의 범위는 지구촌으로 넓혀지고 있다. 지구 반대편 전쟁과 테러의 참상이 실시간으로 우리 눈에 들어오고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안타까움과 분노 또한 들끓고 더 이상 이 전쟁이 강 건너 불구경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엄습한다.
전쟁과 평화라는 역사의 흔적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만 존재하는 과거사가 아니고 현재 오늘 생생하게 숨 쉬며 생명력을 가지고 되살아나는 지금의 현재사다.
낡은 신발의 뒷굽을 보면서 개인의 미시사를 다층으로 느껴야 하듯이 복잡계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각자의 머릿속 황홀을 기대하다가 미사일과 로켓포가 터지는 전쟁의 홀황과 마주치면 어쩌나 하는 기우가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