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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해 록 ] 가깝고도 먼 나와 너 그리고 나라

by 윤해



나와 너가 모여 우리가 되고 우리가 모여 울타리를 만들면 울타리가 국경까지 확장되어 나로 시작된 나라가 완성된다.

이처럼 나라라고 하는 것은 나라의 최소 단위 나로부터 시작되고 나라는 한 인간이 어떤 세상을 만들고자 하느냐에 따라 나라라고 하는 한 국가의 정체성이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와 나라 사이를 이어주는 소위 위정자들의 정신상태와 행동거지에 따라 나라의 흥망과 성쇠가 좌우되는 것은 역사의 기본이요 철칙이다.

선세를 여는 멸사봉공 하는 드문 위정자가 있는가 하면 악세로 인도하는 선사후공의 무리도 득실득실한 곳이 소위 세상을 구해보겠다고 공직에 나서는 이들의 추한 민낯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여기서 중대한 의문이 생긴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행동거지를 바르게 한다고 해서 선세가 온다고 단언할 수도 세상의 원리가 그런 식으로 흘러간 예도 드문 것이다. 찰나를 사는 인간이 만든 세상은 늘 착각과 혼돈의 원리로 우리를 햇깔리게 만들기를 다반사로 하면서 신의 섭리인지 자연의 섭리인지도 모를 아리송한 혼돈 속으로 우리 모두를 몰아넣고 희롱하면서 세상을 사는 인간들을 당황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인류 유일한 구조물 만리장성과 산성전투에 특화된 한국의 북한산성이 작은 벽돌과 울퉁불퉁한 자연석으로 산악능선을 의지하여 외침을 막기 위해 세운 축성법이었다. 이에 비해 내부의 적을 막기 위해 이중 해자를 파고 성 정문인 오 데몬(大手門) 주위에 있는 무사석(武沙石, 켜켜이 네모반듯하게 쌓은 돌)의 크기가 각각 108톤, 85톤, 80톤이나 되는 거석으로 평지에 축성한 오사카 성은 천수각으로 들어가기 위한 마지막 문인 사쿠라몬(櫻門, 벗문) 주위에는 무려 130톤이나 되는 무사석이 버티고 있다. 오로지 주군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로 히데요시가 본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완성한 오사카 성은 히데요시 사후 그의 아들 히데요리와 히데요리 생모 도도요노 모자간의 콜라보는 너무나 어이없게 히데요시가 세운 철옹성 오사카성을 지키는 해자를 메우게 하여 이에야스의 군대를 끌어들이면서 함락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백성을 닦달하여 난공불락의 오사카 성을 물리적으로는 축성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단지 세상의 원리를 요모조모 악용한 희대의 독재자 히데요시의 탐욕으로 버무려진 거석으로 축성된 오사카 성을 물려준 것에 불과하였고 오사카 성이라는 실물을 지킬만한 소프트 웨어를 히데요시에게 물려받지 못한 히데요리와 도도요노 모자는 허망하게 오사카성은 물론 권력을 한순간에 이에야스에게 넘기고 토쿠가와 막부를 여는 단초를 스스로 제공한 것이다.

이처럼 권력도 무상하고 선세와 악세의 경계도 모호한 것이다. 자연의 섭리가 요동치는 현실이라면 세상의 원리는 책 속에서나 구현될 성싶은 가상이다.
현실의 섭리를 가상의 원리가 결코 이길 수 없고 한 치 앞을 예측하기는 더더욱 어렵다는 겸손함을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고정관념이라는 괴물에 함몰되고 만다.

자연의 섭리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것이다. 희비가 교차하고 흥망이 반복되는 세상사에서 단순히 세상의 원리를 세우고 예측하는 책상물림들은 인생역경대학을 고통으로 졸업하면서 자연의 섭리를 몸소 겪은 잡초 같은 끈질긴 야생을 결코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할 것이다. 세상의 원리와 자연의 섭리가 모자이크 되면서 선세와 악세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교차한다.

그러한 악세와 선세가 교차되는 과정에 살고 있는 우리는 원리를 통달하였다 하여 뜻대로 세상이 움직이리라 생각하는 것은 동화 같은 꿈에서나 봄직하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차가운 현실의 해자는 동화 같은 세상의 원리 가지고는 메우기 어렵다. 난공불락의 오사카 성의 해자를 스스로 파묻는 허망함이라는 것은 원리와 섭리가 함께 숨 쉬는 자연 속의 세상에서 흔히 생기는 일이다. 가깝고도 먼 나와 너 그리고 나라가 만드는 세상의 미래는 이러한 현실을 이해하고 겸허히 받아듣일 때 만리장성과 북한산성 그리고 평지의 성 오사카 성을 수성하기도 또는 공성하여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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