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愛憎의 관계는 세상사에서 매우 흔한 관계인 동시에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이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랑의 반대는 증오라고 알고 있지만 좀 더 경험해 보면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오히려 증오는 사랑이 없다면 생겨나지도 않는 감정이며 애증은 언제든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교차의 관계라는 것을 살면서 깨닫는다. 온탕과 열탕을 오가며 타오르는 애증의 관계야 말로 아직도 무한한 관심이 있다는 방증이며 이와는 다르게 차갑게 식은 심장의 서늘함이 상징하는 무관심이야말로 관계가 완전히 끊어졌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이러한 공식은 나나 나라나 매 한 가지이다. 애증의 관계인 한중일은 빙하시대 황해대평원을 가로질러 강화도 마니산에 제단을 쌓으며 해가 뜨는 동쪽 땅을 차지한 제사장 백의민족의 후예인 한국인의 조상과 중국 대륙 화북대평원에 정착한 중국인의 조상 그리고 순다열도를 타고 올라와 일본열도에 터를 잡은 일본인의 조상이 된 조몬인까지 다양한 종족들이 저마다 색깔을 찾아서 자기들 만의 강역을 잡고 한중일이라고 하는 호모사피엔스 문명의 정수를 꽃피우면서 경쟁하고 혼혈된 피의 역사가 바로 애증이 교차하는 한중일의 관계요 역사이다.
이처럼 한 중 일의 관계는 비록 황해 대평원이 황해 바다가 되고 일본 열도와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교류와 고립 전쟁과 평화를 통한 삼국지를 펼쳐나가면서 때로는 전쟁을 통해 경쟁하고 때로는 무역을 통해 교류하였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사실은 한중일은 세계사적으로 독자적인 경제블록을 형성하면서 압도적 숫자의 인구를 부양할 수 있었고 대항해 시대 서세동점 이전의 세계 문명을 이끌고 문화를 생산해 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중일 삼국이 펼쳤던 역사를 너무나 단순화시키면 상호 혐오로 접근하면서 왜놈이니 되놈이니 조센징처럼 경멸적 호칭으로 서로가 서로를 비하하면서 은근히 자국 우월주의에 빠져드는 경우는 국경을 맞대고 사는 나라들 간에는 흔히 있는 일이다. 강과 산맥만 넘어가도 말이 바뀌고 뉘앙스가 달라지며 무엇보다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습속의 차이가 존재하거늘 하물며 국가를 달리하는 나라 간에 오해는 비일비재하다.
이소사대以小事大의 중화질서에 편입된 중국과 한국과는 달리 늘 중화문명에 소외된 체 틈만 나면 약탈과 전쟁을 통해 팍스 시니카를 흔들던 일본은 어쩌면 한중일 삼국의 관계에서 왕따와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중화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아픔을 서세동점의 대항해 시대 이후 열도라고 하는 지리적 이점을 십분 발휘하여 몸은 동양인이지만 생각은 서양인이 되어 19세기 제국주의의 파고에 올라타 마침내 수천 년을 이어온 중화질서를 깨부수고 근대화의 첨병이 되어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신 중화질서를 들고 나오면서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고 만주와 중국을 병탄 하면서 대륙을 넘어 오지의 동남아 말레이 반도를 지나 마침내 인도차이나까지 다다른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헛된 야망으로 한중일은 잿더미가 되었고 20세기의 패권을 온전히 서세에게 넘겼다.
수건 돌리기처럼 한 번 넘어간 패권의 향방은 유럽을 중심으로 맴돌았고 20세기에 들어와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넘겨졌다. 백 년의 제국 팍스아메리카나를 위협하는 중국의 도전이 거세지는 21세기 미중패권전쟁의 결과도 결국은 한중일 삼국의 힘의 역학과 균형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를 믿지 못해 현금 쓰는 일본 국민과 국가에 흡수되어 QR코드 태그하는 중국 인민들 사이에서 신용카드 하나 들고 공짜라면 양잿물도 기꺼이 마시며 호탕하기 짝이 없는 한국 국민들이 내지르는 빚잔치를 보고 있노라면 원교근공을 실천하고 이이제이로서 한중일을 주무르고 있는 노랑머리에 손자병법에 통달한 중국 보다 더 중국적인 미합중국 대통령 트럼프가 떠오르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미중패권전쟁의 가늠쇠가 될 한중일 삼국이 펼치는 삼국지의 끝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가늠자와 짝을 이루어 목표를 정확히 겨눌 수 있는 가늠쇠 역할을 누가 하는가에 따라 패권 승부의 추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게 될 것이다. 오랜 세월 넘버 2 전공이며 소중화와 스몰 아메리카로 잔뼈가 굵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세계패권전쟁의 가늠쇠, 즉 캐스팅 보드를 쥔다는 의미의 무게를 지금 소탐대실하고 있는 위정자들이 과연 실감이나 하고 있을지를 생각하면 한편으로 두렵고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