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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누 Aug 09. 2023

예술가의 일상은 달라야 할까?

원태웅의 <나의 정원>

내 주변의 젊은 예술가들. 그들은 예술 활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알바를 하고, 월세가 비싼 서울에서 작업실을 구하기 위해 쉐어링을 하거나 레지던시에 지원하고, 작업에 필요한 돈을 지원받기 위해 계획서를 작성한다.

대학 동기 중 가장 활발하게 작가 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예술가는 전시를 하면 할수록 가난해진다. 작업하라고 받은 돈이 죄다 작품에 들어가기 때문에 전시가 끝나면 남는 돈이 없거나 사비를 더 지출한 상태가 된다. 반대로 전시를 하지 않을 때는 따로 일을 할 수 있어 돈이 모인다. 예술가가 작업을 할수록 가난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


왜 이런 상황이 됐는지 정확하게 진단할 순 없다. 현재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은 대부분 국가의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그렇게 넉넉한 돈을 받진 못한다. 그 지원금도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경제가 나빠지고 있는, 돈 없는 국가는 문화에 쓰는 돈을 가장 먼저 줄인다. 복지나 국방에 반해 예술은 생사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업이나 시민에게 강제로 예술에 돈을 쓰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의 정원>의 피사체인 이재헌 작가는 직업 예술가이다. 직업 예술가란 예술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그는 매일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작업실로 출근해 그림을 그린다. 그 과정은 계절이 바뀔 때까지 반복된다. 반복은 예술 창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순간의 영감이나 아이디어로 작품을 만들 것으로 생각하지만, 작품은 반복에서 만들어진다.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반복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위에서 말했듯 생계를 예술 활동으로 이어나가지 못하는 작가들은 작품을 위해 반복할 시간이 없다.


작품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없다면, 예술가들은 작업을 반복할 수 있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이재헌 작가는 본래 서울에 있던 작업실을 제천으로 옮기고, 출근하는 아내 대신 아이를 돌보고 저녁을 만든다. 이것은 그가 반복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재헌 작가는 형체를 그리고 그 위에 물감을 덧칠해 형체를 지우는 독특한 방법을 쓴다. 작가는 ‘붓질은 확신이고 지우는 것은 의심’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렸던 것을 지우는 데 큰 의미를 둔다. 그가 지우는 형체는 대부분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는 사람을 그릴 때 어떤 의심을 가진다. 그 의심은 화가의 자화상에까지 확장된다. 의심으로 완성된 그림은 어려운 철학적 설명을 추가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미지가 된다.


영화가 시작하고 26분 후, 화가가 자는 장면을 시작으로 기묘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화가는 낯선 곳을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고, 감독은 그의 뒤를 따른다. 화가는 절대 앞모습을 보이지 않고, 그의 뒷모습과 낯선 풍경들이 교차 편집된다. 이 시퀀스는 감독이 화가의 방법론을 영화적으로 응용한 결과물이다. 원태웅 감독도 사람을 찍는다. 그리고 화가와 같은 의심을 한다. 내가 찍고 있는 영상이 과연 이 피사체를 얼마나 잘 담고 있는 것일까?


한 사람을 완전하게 묘사했다고 말할 수 있는 예술가는 없다. 작가가 아무리 정확하게 묘사하려 해도 그 사람은 계속 도망가기 때문이다. 그런 불확실성 속에서 예술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에게 박힌 피사체의 인상을 독특하게 표현하는 것뿐이다. 감독은 영화 내내 피사체를 바라보기만 하다가, 이 시퀀스에서 유일하게 피사체에 개입한다. 감독은 이 개입을 통해 피사체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심하면서 피사체와 더 멀어진다. 이게 <나의 정원>의 장점이다. 불확실성과 함께, 대상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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