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ca Oct 23. 2023

개미들의 소소한 하루를 더 좋아한다

서울에서의 7번째 이사가 끝났다.

이삿날은 비가 오지 않았고 짐을 분실하지도 물건이 파손되지도 않았으며 이전 집주인에게서 보증금도 깔끔하게 돌려받았다.    

  

 6년 간 살았던 집의 보증금을 말 그대로 깔끔하게 돌려받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집주인은 여간한 구두쇠가 아니었다.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보증금을 줄 생각이 없었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여럿 있었지만 계약 만료가 가까워 오는데도 세입자가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자 살고 있는 동안은 어떠한 수리도 해주지 않던 집주인이 하루가 멀다 않고 집에 와서 이곳저곳을 수리하거나 나더러 고치라고 하기 일쑤였다. 누구보다 이사를 원했던 나는 문고리를 직접 바꿔달고 찢어진 벽지와 장판을 보수하고 가구를 이동시켜 조금이라도 넓어 보이게 만들었다. 이러한 눈물겨운 노력 끝에 드디어 집은 계약되었다. 이사 갈 집을 계약했을 때보다 살던 집이 빠졌을 때가 더 기뻤다. 수도세와 정화조청소비 등 명확하지 않은 금액을 이사 당일까지 받아내던 집주인과 드디어 모든 것이 만료되었을 때 마음속으로 기쁨의 환호를 내질렀다.      



 은행직원 3명, 부동산중개인 9명, 이삿짐센터 직원 7명, 집주인 4명, 집 보러 온 사람 7명, 집 보러 가서 만난 사람 6명, 세무서 직원 2명, 에어컨 설치기사 2명, 인터넷 설치 기사 1명, 아파트 관리인 2명, 중고거래자 16명, 주민센터 직원 2명, 도시가스기사 2명, 식탁 배송기사 1명 등 60명도 족히 넘는 사람들을 이사하며 처음 만났다. 이사란 대단한 에너지를 가지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이사 온 이곳을 나의 집으로 만들어야 하는 세세하고 귀찮은 작업들이 남아 있었다. 취향이 많이 달랐던 이전 세입자들은 안타깝게도 너무나 부지런했다. 곳곳에 자신들의 셀프인테리어 솜씨를 자랑했는데 나로서는 하나도 고맙지가 않았다. 우선은 창문 곳곳에 붙은 스티커들을 떼는 게 급선무였다. 결혼하는 남녀의 모습을 프린팅 한 커다란 스티커가 거실 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Wedding, Love, Happy 같은 글자들을 하나씩 떼어내자 이제는 남은 스티커 자국이 미워 보였다. 욕실 벽과 거울에도 이 취향은 여실히 반영되어 있어 조금은 슬퍼졌다. 새로 시공한 싱크대 냄새제거와 방충망 보수, 시트지 붙이기, 배송된 물건 조립과 주문, 청소 등 해야 할 일은 아직도 많았다.



 돈이 많아 새집으로 이사했다면, 세입자가 아닌 소유주라면 겪지 않아도 될 많은 일들을 겪었다. 나는 개미 같이 작아지기도, 개미처럼 부지런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더 이상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이 위안이 되었다.     

 

 거실 한쪽에 놓아둔 일인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소소한 해방감을 만끽하며 고개를 들었을 때 추욱 늘어진 새로 바른 도배지를 발견했다. 그렇다. 이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배 보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