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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ca Nov 18. 2023

소수

 D고등학교 행정실장의 방은 교장 집무실만큼이나 넓었다. 청자 화분에 담긴 반질거리는 난들이 스무 개는 넘어 보였다. 실장은 두툼한 갈색 가죽 의자에 앉아 들어오는 K에게 잠시 눈길을 주었지만 소파에 앉으라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담달부터 6개월 근무하신다구? 그래, 경력 있으시던데 열심히 해봐요.”

마치 자기 덕에 뽑힌 줄 알라는 듯 인사받는 내내 심드렁한 그의 표정에 K는 궁금증이 들었다. 교감, 교장도 뵙기 전에 행정실장에게 먼저 인사를 하러 온 적이 있었던가. 행정실을 통해 들어가는 방은 지금까지의 학교들에선 교장실로 쓰였다. 재단의 재산을 관리하는 이사장의 연줄일까. D고등학교는 시작부터 K에게 의문투성이였다.     


 출근할 때마다 교감은 화단의 쓰레기를 주우며 교사들의 출근시간을 예의주시했다. 이곳의 사람들과 모든 절차와 시스템은 그 옛날 그대로 고여 있었다. 수십 년을 매타작에 쓰였을 반질거리는 당구 큐대를 여전히 한 몸처럼 챙겨 교실로 향하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면 K는 20여 년 전으로 회귀한 느낌이 들었다, 공공연한 비밀 같은 교내 흡연 구역이며, 명패가 부끄러운 창고 같은 공간의 여교사 휴게실도. K가 가장 혐오하는 것은 버릇처럼 개인 신상에 대한 질문을 해대는 것이었다. K가 사는 영등포의 아파트가 자가가 아니라는 것과 키우고 있는 개의 사료 브랜드까지 밝혀지는 데 이틀이면 충분했다.     

  “부장님, 궁금한 것두 많으세요.”

 옆자리 P는 곤란한 K의 표정을 보곤 종종 이런 말을 부장에게 날렸다. 끊임없이 질문하는 병에 걸린 부장도 P의 말을 듣고 나면 못마땅해하는 기색 없이 잠잠해졌다. 올 새 학기부터 출근하기 시작했다는 P는 대담한 면이 있었다. P 역시 계약직 교사였지만 다음 학기 계약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이 할 말은 했다. 진정한 MZ란 이런 것일까 P의 모습을 볼 때면 K는 반성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둘이 있을 때 P는 아직도 라떼 시절에 살고 있다며 그들을 씹어댔고 K는 그녀와의 대화에서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꼈다. 50대 남교사들이 대다수인 이곳에서 공동의 적을 가진 P는 K에게 진정한 아군이었다.    

 

 학교에 존재하는 소위 라인이며, 같은 재단 내에 떠도는 소문까지도 P는 잘 알고 있었다. 강남에서 자차로 출퇴근한다는 그녀는 예술 과목 선생답게 거침이 없었고 집도 꽤나 잘 사는 눈치였다. 자유분방한 성향의 그녀가 어쩌다 이런 곳에 와서 반년 넘게 고생하며 버텼을까 대견한 생각이 들었다. K는 P가 업무적인 도움을 요청할 때면 기꺼이 자기 일을 제쳐 두고라도 도와주곤 했다.     


 방학을 앞두고 교감은 계약직 교사들을 한 명씩 불러 내년의 거취에 대해 통보했다. 교감은 K에게 새 학기엔 담당과목의 인원이 줄게 되어 아쉽지만 함께할 수 없겠다고 말했다. 그 표정이 꽤나 미안해 보였고 새 학교를 잘 구해보라고 걱정 어린 말을 하기에 K는 수긍했다. 다음 학교에서 K에 대한 평판을 물어올 때 교감이 이상한 소릴 하진 않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2월 출근 일을 며칠 앞둔 겨울방학, P에게서 카톡이 왔다. D고등학교에서 낸 계약제 교원 모집 공고문을 찍은 사진이었다. K의 과목에 교사를 뽑고 있었다. 교육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고문 원본을 확인했다. 과연 P의 말 대로였다. 접수 마감은 어제로 끝나있었다. 어찌 된 것인지 모르겠다는 P의 말들 위에 P가 보낸 사진을 다시 들여다봤다. 노트북에 있는 공고문을 폰으로 찍어 보낸 것이었다. 급하게 찍었는지 노트북 옆에 놓인 탁상거울 한쪽이 함께 찍혀있었다. 사진을 보던 K는 문득 탁상 거울 속 P가 웃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P는 경력도 없이 1년짜리 계약직 교사 자리에 온 사람이었다. 담임도, 수업 외의 특별할 업무랄 것도 맡고 있지 않았다. 새 학기에도 그녀는 여전히 대담하게 D고등학교에 있을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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