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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Jun 25. 2024

명화를 따라 영원히 떠도는 인생사

[도서] 결정적 그림 Review

1878년 11월 25일 웨스트민스터의 엑스체커 법정에서 세기의 미술재판이 열렸다. 최고의 비평가인 존 러스킨과 동시대 화가인 제임스 맥닐 휘슬러가 주인공이었다.


「검정과 금빛의 야상곡 : 추락하는 불꽃」이 문제작이었다. 런던의 한 화랑에서 이 거무죽죽한 그림을 발견한 러스킨은 작품의 값이 200기니(현재 가치로 약 2,400만 원)나 되는 것을 보고 분노했다. 그래서 펜을 들고 신랄한 비평을 써 내렸다.


한 어릿광대가 대중 얼굴에 물감을 한 바가지 퍼붓고는 200기니를 요구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어릿광대'라는 표현에 특히나 분노한 휘슬러는 러스킨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 금액을 부른 이유는, 내가 일생동안 얻은 모든 지식, 평생에 걸쳐 키운 모든 감각을 그 작품에 담았기 때문이요.


판사는 결국 휘슬러의 손을 들어주었다.   




화가의 인생이 담겨있는 명화



휘슬러는 지식과 감각만을 이야기했지만, 그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거장 22인의 인생을 살펴본 결과, 공통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화가는 자신의 인생 그 자체를 캔버스 위에 파격적으로 쏟아붓는다.


그것은 고의적일 수도 있으나 필체와도 같이 자연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들이 받는 영감은 경험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과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사과를 그리겠는가. 눈동자가 찍어낸 사진을, 내면에서 파도치는 잉크를 통해, 손으로 출력해 낼 수밖에 없다. 물론 르네 마그리트만큼은 그림을 화가의 결핍과 연관 지어 해석하자 오직 재미를 위해 그렸다고 분명히 했지만.


따라서 화가의 그림에는 인생이 꾹꾹 눌려담겨 있다고 전제하면 흥미로운 현상을 마주할 수 있다.


거장이 되려면 인생의 고난 하나쯤은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예술가들의 삶은 박복한 경우가 많다. 443페이지 동안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리다가 부와 명예까지 안고 눈을 감은 화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가 저마다 달랐다. 에곤 실레나 에드바르 뭉크는 어두운색을 사용하여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적나라하게 표현해 낸 반면,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인생의 환희만을 담아냈다.


저마다 자신의 방식대로 인생을 그려내는 모습이었다.



 

내가 바로 그 추악한 그림을 그린 인간이오!



뭉크의 유년 시절은 고통뿐이었다. 어머니와 누나를 폐병으로 잃었고, 아버지는 자식들을 불러 모아 줄 세워 뺨을 갈기거나 엉덩이를 후려쳤다. 그런 와중에 뭉크는 몸까지 병약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봄날의 햇살 속에서도, 여름날의 찬란한 햇빛 속에서도 그들은 나를 따라다녔다.


뭉크가 말하는 '그들'이란 공포와 슬픔, 그리고 죽음의 찬사였다.


이처럼 우울한 성향을 띄는 뭉크가 그려낸 그림들을 보고 한 방문객이 소리쳤다. "이건 다 악령의 사주를 받은 그림들이에요!" 전시장은 난장판이 됐고 뭉크의 개인전은 여드레 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훗날 이 사건은 '뭉크 스캔들'로 불린다.


이후로 '흡혈귀 화가', '악마의 하수인' 등의 별명을 얻게 된 뭉크. 그가 그린 그림 중에서 모두가 알만한 작품이 있다.


바로 「절규(The Scream)」다. 이것은 뭉크가 친구들과 교외에서 산책을 하다가 느낀 감정을 담아낸 것이다. 노을이 지는 것을 보고 그것이 불꽃과 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에게는 자연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제자리에서 공포에 떨었다.


이처럼 정신병에 시달리던 뭉크는 인간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인생의 부정적인 측면에 파고들어서 천재적으로 표현해 낼 줄 알았다. 뭉크에게 예술은 과장이나 미화가 아니라 '그대로 꺼내놓는 것'이었다.


  

꾀죄죄한 애가 쓸데없이 그림은 화사하다



반면에 고통스러운 현실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작가도 있다. 바로 오귀스트 르누아르다.


르누아르는 열세 살쯤에 도자기 공장에 취직했다. 유복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미술을 시작하고 친한 친구들이 생겼는데, 바로 모네와 바지유였다. 하지만 1870년, 보불전쟁이 발발하며 친하던 바지유가 죽었다는 비보를 전해 듣게 된다. 말년에는 류머티즘성 관절염이 찾아와서 몸무게가 줄어들었고, 걸으려면 지팡이가 필요했다.


이처럼 인생의 풍파가 많았던 르누아르가 듣던 조롱이 있었는데, 바로 '꾀죄죄한 애가 그림은 쓸데없이 화사하다'는 것이었다. 르누아르의 그림에는 그늘이 없었다. 화사한 그림을 그리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감정들을 소거시켜 버린 듯했다. 현실은 고될지라도 그림만큼은 아름다웠다.


르누아르의 「파라솔을 든 여인이 있는 풍경」이다. 제목처럼 파라솔을 든 여자의 옆에 허리를 굽히고 있는 남성이 있다. 아마도 꽃을 따서 건네주려는 것만 같다. 보기만 해도 눈이 화사해지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는 평생 그림 5,000여 점을 그렸다. 그리고 이 많은 그림을 그리며 가지고 있던 철학이 있는데 '그림이란 사랑스럽고, 즐겁고, 예쁘고도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사람들이 독서하고 뜨개질하는 여인을 그려선 안 된다. 고통받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려야 한다.'던 뭉크와는 대비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캔버스 뒤에는 사람이 존재한다


왕실 최고의 화가였지만 타인을 편견 없이 바라보던 디에고 벨라스케스. 예술가는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적극적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해 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절절한 그리움 끝에 남은 사랑을 표현한 이중섭.


이처럼 각자 다른 경험을 가지고 다른 태도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림들은 개성이 넘친다. 자아가 강한 예술가들의 붓질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 틈 따위는 없다. 그들은 온전히 개인적인 감정을 캔버스에 흩뿌렸다.


그리고 이들의 인생사는 아름다운 명화와 함께 영원히 떠돌아다닐 것이다. 만약 호기심이 생겼다면, 허공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붙잡아 한 곳에 모아놓은 「결정적 그림」을 읽어보길 바란다. 저자인 이원율은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정한 스토리텔링을 했다.


읽는 일을 넘어 이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는 듯, 책을 펼치는 일 이상으로 이들의 매 순간을 발맞춰 걷는 듯한 감정이 들도록 구성했습니다. (7p)


덕분에 압도적인 몰입감을 자랑하는 책이다. 거장 22인의 삶을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라도 감상하듯이 지루하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 그러니 삶에 투쟁적이었던 사람들의 발버둥을 엿보고 싶다면 해당 저서를 읽어보길 바란다.




*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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