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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Dec 31. 2024

겨울은 웨이브투어스의 계절

때로는 잡히지 않는 선율들이 온기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며칠 전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도통 추워지지를 않기에 이번 겨울은 미적지근한가보다 생각했는데 한순간에 이를 달달 떨게 됐다. 옷장 구석에 있던 목도리를 꺼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옷을 두껍게 입느라 둔해지고,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기침하고, 립밤 없이는 버티기 힘든 계절이지만. 조금은 반가운 이유가 있다.


겨울은 wave to earth의 음악을 듣기에 적절한 계절이다. 하얗게 내리는 눈송이를 보며 그들의 음악을 들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어 온다. 그리고 낭만적인 순간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적어 내리게 됐다.


먼저 사랑하는 밴드 「웨이브 투 어스」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인디 록과 기타 팝의 절묘한 조화를 선보이는 밴드 「wave to earth」. 팀명은 '언젠가 우리가 새로운 흐름이 되어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커다란 꿈을 가지고 음악을 시작한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어느새 수백만 명의 리스너를 가지고 해외 투어를 줄곧 매진시키는 밴드로 성장했다.


그들은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들며 가내수공업 밴드라는 명칭을 얻었다. 작곡부터 녹음이나 믹스, 그리고 비주얼 디렉팅까지 하고 있다. 친구이자 아트워크 멤버인 홍승기와 함께 감각적인 영상이나 아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다.


섬세하게 만들어진 앨범들을 전부 소개하고 싶지만, 이 글에서는 다가오는 겨울과 어울리는 세 곡을 선정했다.




seasons




But I'll pray for you all the time
If I could be by your side
I'll give you all my life my seasons
By your side I'll be your seasons
My love


사랑에 닿기 위해 얼마나 많은 포말을 만들어내야 했는지. 


앨범 소개를 읽다 보면 사랑에 휩쓸리고 싶어진다. 추위를 외로움으로 착각하기 쉬운 계절에,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심이 든다. 겨울이 조건 없이 다가오는 만큼 사랑도 당연하기를 바라본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은 로맨스 영화에서나 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남자 주인공들이 인기를 얻는 것은, 그들이 마땅하다는 듯이 주는 마음이 희귀하기 때문이다. 헌신적이고 다정한 사랑은 흔하지 않으므로 순식간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seasons」이 wave to earth의 노래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화자는 초라한 자신을 떠나버린 상대를 미워하지 않고 남겨진 자리에 데이지 꽃을 피운다.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당신에게 모든 계절을 주겠다는 가사는 마음을 녹인다. 겨울에 머물던 사람들을 순식간에 봄으로 이끈다.




annie. 



You'd call me a loser, oh
"Why won't you compromise?"
I'd rather give you an F
Fuck you, I am saying


듣다 보면 눈치채겠지만, 'annie'는 여자의 이름이 아니라 거절을 뜻하는 순우리말 '아니'다. 타협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패배자라며 욕하는 사람에게 단호하게 대답하는 노래다.


무한하게 경쟁하는 사회에서 현실과 타협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화려한 숫자들에 연연하거나 온갖 보석들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wave to earth는 무심하게 터놓는다. 어차피 화려한 반지는 내 손에서 빛나지 않으니 필요 없다고.


"저희는 돈이나 명예를 좇지 않고, 진정한 음악가가 되는 데에 집중하고 싶어요." 


NME와의 인터뷰에서 김다니엘은 그렇게 말했다. 리스너들의 관심이 관건인 밴드도 줏대 있게 자신을 지키는데,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거짓되게 꾸밀 필요가 있을까? 혼란한 세상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annie.」를 들어 보자. 그리고 당당하게 외치자. 나는 '아니'라고.




bad  



How could my day be bad
when I'm with you?
You're the only one who makes me laugh
So how can my day be bad?


보컬인 김다니엘은 언제나 하나의 단편소설을 쓰는 느낌으로 곡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거기에서 인물 간의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의 사랑을 장치로 사용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bad」야 말로,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첫눈 같은 사랑을 단편 소설처럼 표현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하루 종일 넷플릭스를 보며 지루해하다가 무작정 밖으로 나간 화자는 공원에서 한눈에 상대방을 알아본다. 그리고 심심하던 하루가 순식간에 특별해진다.


당신과 함께 있는 하루가 어떻게 나쁠 수 있을까요?

당신은 내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그러니 내 하루가 어떻게 나쁠 수 있겠어요?

오늘은 당신을 위한 날이에요


겨울에 생일을 맞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곡이다. 시계 초침이 정각을 향하는 순간, 소복이 쌓인 눈을 밟으며 오늘은 당신을 위한 날이라고 속삭이는 노래를 들어보기를 바란다. 




이불과 난로, 그리고 웨이브투어스 


주머니에 핫팩을 넣고 다니는 것처럼 온기가 담긴 노래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담아 둔다. 사랑을 다정하게 속삭이는 노래를 들으며 코끝은 빨개져도 마음만큼은 따뜻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불과 난로, 그리고 웨이브투어스가 있기 때문에 겨울을 버틸 수 있다.


그러니 이번 겨울이 유달리 추운 사람들이 있다면 속는 셈 치고 추천곡들을 들어보기를 바란다. 때로는 잡히지 않는 선율들이 온기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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