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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Jan 04. 2025

스토리가 부여되는 순간 생명력을 갖는 그림

[전시] 그림책이 참 좋아展 Review 


손에서 그림책을 놓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림이 널려있는 전시회장에 가고 글이 빼곡한 소설책은 읽어도 그림책에는 흥미가 없었다. TV를 켜서 볼 게 없나 구경하다가 유아 전용 채널이 나오면 무심하게 넘겨버리는 느낌과 비슷했다. 얼마 전에 제주도에 갔을 때, 책방에서 예쁘게 전시된 그림책을 보고 소장용으로 하나 구매해볼까 생각한 게 전부였다.


그래서 「그림책이 참 좋아展」을 가면서도 일러스트를 구경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최숙희, 윤정주, 김영진, 유설화 외 국내 최고의 그림책 작가 20여 명과 함께 세계적인 해외 작가들의 작품도 같이 전시되기 때문이었다. 전시명에 대놓고 박힌 '그림책'이라는 키워드를 소홀히 여겼다.


하지만 현장에 가서 직접 전시를 감상하며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충분히 아름다운 이미지에 스토리가 부여되는 순간, 작품이 얼마나 풍부해질 수 있는지를 체감했다.




남들보다 느리고 서툴러도 괜찮아 


거북이자리 ⓒ 김유진, 책읽는곰


어린아이가 낮잠을 자며 꾸는 꿈같은 그림이었다. 순수하게 비현실적이라서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지나가다가, 작품 주변에 있는 캡션을 보고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위의 그림에는 남들보다 조금 느린 여자아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서우는 무엇을 하든 또래보다 조금 느린 편이다. 달리기 시합이 있는 날, 발이 느린 서우 때문에 반 친구들이 꼴찌를 하고 말았다. 미안한 마음에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뒤처져서 걷다가 새로 생긴 수족관 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된다.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는 알록달록한 물고기들 사이에 거북이가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쪽 귀퉁이에서 혼자 볕을 쬐고 있던 거북이가 계속 생각났다. 결국 거북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에 색종이를 접기 시작한다. 그런데, 별안간 색종이 거북이가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저만치 앞서나가는 물고기들을 보니
거북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나 때문에 꼴찌하면 어떡해?"
"괜찮아, 같이 가는 게 더 재밌으니까."
거북이가 빙긋 웃었어요.


느리고 뒤처지더라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는 이야기였다. 내용을 알게 되자 뒤쪽에서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는 거북이가 눈에 띄었다.




그림책을 통해서 치유의 시간을 가져 보기 


'스토리'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저 예쁘다고만 느껴지던 그림에 일화가 부여되는 순간, 각각의 캐릭터에게서 생명력이 흘러넘치게 된다. 독자들은 전보다 수월하게 몰입하며 스토리를 자신의 경험과 연관 짓고 공감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림책은 독자로 하여금 다채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때 주목할 점은, 우리가 몰입하여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긍정적이고 밝은 것들 위주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그림책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만큼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컨텐츠가 넘쳐나는 요즘, 그림책을 보며 치유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추천한다.  


인사 ⓒ 김성미, 책읽는곰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 그림책에 입문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치 그림책 속 세상을 여행하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공간 구성과 초대형 미디어아트를 통해 아름다운 작품들에 금세 빠져들 수 있다. 어떤 그림책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2025 그림책이 참 좋아展」은 오는 25년 3월 2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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