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만에 브런치에 글을 쓴다.
글을 쓰지 않는 동안 무척 바빴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무릅쓴 변명이다. 글을 쓰지 않는 첫 몇 주 동안은 생각보다 행복했다. 일주일에 두어 편, 꾸준히 써 내려가자는 나와의 약속은 50여 편의 졸작을 내놓게 했지만 생각보다 힘든 여정이었고 부담을 내려놓고 육아든 일이든 친구와의 만남이든 미뤄두었던 일들을 죄책감 없이 해나가는 일은 기뻤다. ‘워킹맘이니까, 지금은 내 커리어에서 중요하고도 힘든 시기이니까, 아이에게 소홀했던 만큼 더 몰입해서 곁에 있어 주어야지.’
변명은 가득했고
그들에 기대어 내려놓은 글쓰기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도 작고 보잘것없었다.
무슨 일을 하든 마음 한 귀퉁이에 붙어 서서 ‘이제 글 쓸 시간이야‘, ’이번 주에는 한 편도 못 썼어.‘ ’이 일은 글감으로 괜찮겠는데!’ 쉴세 없이 조잘대던 글 쓰는 자아가 잠시 침묵을 지킨다. 그 순간 세상은 이토록 조용했었나 싶을 정도로 적막하고 가벼워진다. 늘 마음 한 편에 나를 붙잡던 그이가 입을 다무니 무엇이든 기꺼운 마음으로 해 나갈 줄 알았다.
그렇게 글쓰기를 내버려 둔 시간, 맘 속 깊숙한 곳에서 웅크리고 있던 그녀가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의식의 무대 중심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물었던 입을 떼 그동안 묵혀 두었던 이야기까지 조잘조잘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든 그가 입을 열면 글감이 되었고 그가 마음을 장악하면 생각은 그물처럼 뻗어나가 운전 중에도 수업 중에도 상담 중에도 아이와의 사랑 어린 대화 중에도 글의 흐름이 내 정신을 지배했다.
그래도 쓰지 않았다. 글을 쓰려하면 조잘대던 수다를 딱 멈추고 그동안 쓰지 않은 나를 질책하듯 토라져 사라지는 그를 마주하는 것이 겁이 났다. 빈 화면에 깜빡깜빡 점멸하는 커서가 무서웠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나를 질책하며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지 않으려면 입술을 깨물고, 다시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글을 쓰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이른 아침 집을 나선다.
다시 그녀를 만나려면 여기여야만 한다고 마음에 품어두었던 장소로 향한다.
비 오는 여름, 30도를 웃도는 폭염에 습기까지 엄습하지만, 에어컨도 없고 밝은 조명도 없는 그곳으로 간다.
조용히 흐르는 모차르트와 새소리가 가득한 도심 속 정원.
마침 주룩주룩 퍼붓는 비와 천둥, 번개 속에 처연히 홀로 있는 그곳으로.
책과 글을 좋아하는 이를 위해 열어 놓은 그 누군가의 마음에 감사하며 주인이 선뜻 내어준 이곳에서 내 손은 멈추었던 춤을 다시 춘다.
그동안 토라졌던 그녀를 어르고 달래 본다.
쉽사리 마음을 내주지 않는 그녀이지만 빈 화면을 앞에 두고 의미 없는 단어들을 타닥타닥 써 내려가는 이 순간 나는 불연듯 확신한다.
언제고 나는 다시 그녀가 될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