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부턴 항상 받기만 하면서 어쩌다 한 번 부탁받으면 그렇게 성질이 난다. 예나 지금이나, 어려서나 나이를 먹어서나 자식을 키우기 전이나 후나. 철딱서니 없게-
쉬는 날이었다. 나름 계획을 세우고 행동하는 편인 나.
한 낮엔 별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엄마와 나인데, 하교하는 딸아이를 챙기느라 엄마한테 전화가 왔었고 부재중이 찍힌 줄도 모른 채 다시 울리는 진동 소리에 그제야 확인할 수 있었다.
뭔가? 싶어 전화를 받아보니 부동산에 집을 내놨는데 5시에 집을 보러 온다고 했다는 것. 아무도 없으니 그 시간 맞춰 가있으라는 것이다. 짜증이 올라왔지만 과감 없이 표현될 거 같고 옆에 있는 딸아이 챙기는 갓이 먼저라 일단 다시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고 후후, 차분한 감정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서윤이 한 손에 슬러시 쥐어준 뒤 학원으로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더니 집을 내놓았다 말았다 했는데 지난주부터 다시 내놓았던 상황이었는데 하필 엄마가 없는 당일 연락이 와 나에게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짜증 났지만 이미 나는 가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서윤이 학원 끝나기 전 해야 할 거 끝내고자 부랴부랴 정리하며 저녁에 먹일 반찬거리를 만드는데..... 다시 울리는 엄마의 전화-
다급하면서도 멋쩍음이 한껏 풍기는 목소리로 3시에도 집을 보러 오기로 했다며 당장 빨리 가라는 것이다. 인상이 찌푸려지며 시계를 올려다보니 2시 45분,, 이번엔 짜증이 아니라 울컥하는 마음속 분노가 치솟았다.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건 나뿐만이 아니구나-
내가 제일 싫어하는 행동, 집에 잘 있는 사람 불러서 뭐 가져가라 뭐 해라하며 심부름이라고 전혀 생각되지 않고 부려 먹는다고만 느꼈던 지난날의 기억이 떠올랐고 그게 무슨 좋은 거라고 닮아가는 현실에 더 화가 난 것이다.
뭘 빨리 가라고 하냐며 버럭 짜증을 내곤 후다닥 뛰어나와 평소 걸어 다니는 거리를 버스까지 타고 갔다. 급해지는 마음은 사실이었고 도착해서 한숨 고르고 있더니 부동산 사람들과 집을 보러 온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아들 집을 사준다고 했고 돈이 많은 아빠인 할아버지도 돈이 많은 아빠를 둔 얼굴 모를 그 아들도 다 부러워진 순간이었다
그날 그렇게 왔다 갔다 두 번이나 했고 왜인지 안 팔리던 집이 팔릴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는데 나의 감각이 떨어지는 편은 아닌 듯 느낌이 벗어나지 안 있고.. 그날 저녁 바로 연락이 왔다는 것. 그리거 다음날 계약까지 완료..
마음이 이상해졌다. 전날까진 분명 남편에게 빨리 집 팔려서 여러 행동으로 나 좀 그만 괴롭히면 좋겠다고 한탄을 해댔는데 진짜 집이 팔렸고 그로 인해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와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근처가 아닌 마음먹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거리로 멀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가라고~ 가라고.
가면 좋겠다고 했는데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새로운 그 먼 곳에 집을 구했고 계약까지 해서 이사 날짜가 정해졌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나니 알게 되었다. 그냥 나는 어린아이처럼 심술이 났던 것이고 유치하게도 마음 표현을 더 거꾸로 하고 있던 것.
며칠 뒤면 다가오는 나의 생일.
일하는 날, 점심시간 맞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낮에 온 전화라면 그다지 반가울 소식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 전화 통화가 내키지 않았지만 받아 들었더니 엄마는 곧 다가오는 내 생일이야기를 꺼내며 주말에 밥 먹자는 했고 순간 오랜만에 엄마랑 만남이라 설렘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내 설렘을 와장창 무너뜨리는 말은 곧이어 나왔다
새아빠 생일이랑 나랑 며칠 차이 나지 않으니 겸사겸사 같이 먹자고 했고 싫다는 나의 말에 환갑이잖아, 일 년에 한 번이잖아- 더 싫었다. 그래서 뭐? 환갑이 뭐? 못된 거 알지만 싫다고
안 좋게 통화를 마친 그날 저녁, 엄마는 힘드면서도 우리 집으로 왔고 쌀쌀맞게 왜 왔냐는 말에 애들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고 그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고맙고 좋으면서도 좋게 행동이 나가지 않았다.
엄마는 아이들과 짧게 시간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걸 보는 내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차라리 말을 대놓고 하지 밥을 먹자고, 다시 또 이야기를 하던가 쌀쌀맞게 대하는 나에게 너무한 거 아니냐고 한소리라도 하지.. 그럼 마음이 그렇게 아리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게 상처받은 얼굴로 문 닫진 말지..
마음이 이토록 쓰라리고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그럼에도
못돼 먹은 딸은 끝내 밥 먹자고 하지 않고 있다. 이런 행동을 하면서도 내 자식들이 이러면 어쩌지 떠오르는데..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날려버렸다. 이토록 상상만 해도 끔찍한, 그 끔찍한 짓을 내가 하고 있나 보다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면 그렇게 사람 좋은 척하며 사는데
정작 내가 제일 소중히 여겨야 할 대상에겐 함부로 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고 바보 같은 걸 한번 더, 아니 계속해서
깨닫고 있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이 마음을 어찌한단 말인가, 이토록 싫은
걸 어쩌란 말인가, 사람 되려면 멀고도 먼 못돼 먹은 딸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