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휴가를 보내며
여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더위가 덜한 초여름을 선호하지만, 한여름에서 늦여름까지 하나도 버릴 곳 없는 계절이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짙은 초록빛에 에너지가 솟는다.
식지 않는 열기에도 밤 산책은 깊은 정글을 탐험하는 신비감이 느껴진다.
여름과 바다 수영은 내게 최상의 선택지다. 이 둘이 가장 잘 어울리는 강원도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장마가 완전히 끝났을 것 같은 8월 중순으로 여행일을 정했다. 그런데 그 날짜에 비가 온단다. 일정에 없던 날씨 변동은 나를 겸손하게 한다.
남편을 설득한 식도락 여행 컨셉에 맞춰, 우럭매운탕을 점심 메뉴로 택했다.
바다 수영하기엔 무리인 흐린 날씨로, 실내 문화 유적지를 돌며 시간을 보냈다.
선교장을 돌아보며 선조들의 생활 양식을 간접 체험했다, 여인들이 바삐 움직였을 부엌, 손님과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사랑방, 조상들의 영혼을 고이 모신 사당까지 구석구석을 눈에 담았다. 사극 드라마를 잘 보진 않지만, 언젠가 드라마에서 이곳을 발견하면 반가울 것 같다.
바다 수영이 빠진 여름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이다.
숙소의 프론트 직원에게 물었다.
“해변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걸어서 10-15분 정도요. 가실 때는 괜찮은데, 돌아오는 길이 힘드실 거예요. 내려가던 언덕을 올라와야 하거든요.”
장거리 운전 후 곤히 잠에 빠진 남편은 두고, 혼자 해변으로 향했다.
해수욕장 안내판에 폐장이 이틀 후라고 적혀있다. 며칠 후 이곳은 조용한 산책로로 바뀔 것이다.
잠시 스트레칭을 하며 나 자신에게 신호를 보냈다.
“많이 기다렸지? 이제 들어가자!"
스노쿨링 도구 없이도, 맑은 바다는 투명하게 속내를 보였다.
이른 아침 첨벙거리는 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산책하다 멈춰서서 나를 보며 뭐라 뭐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물안경을 끼고 바다와 한 몸이 된 나 또한 그들을 구경했다. 노부부의 꽉 잡은 손, 바닷물에 발만 담그고 돌아가려는 이십 대 남자들. 그룹에서 떨어져 홀로 산책 중인 중년 여성 등. 우리는 잠시 서로의 삶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체크아웃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에.
물기를 머금은 수영복과 겉옷 덕분에 훨씬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언덕 위를 걸었다. 정오로 향하는 태양은 점점 더 이글거렸다.
문득 도로 옆에 사이클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두 개의 사이클은 나를 쑥 지나쳐 앞으로 치고 나갔다. 그 뒤로 사이클 한 대가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언덕 위를 올라갔다.
내 옆을 스칠 때, 그의 표정은 땀범벅이 되어 일그러져 있었다. 괴로운 표정으로 앞선 사이클을 쫓는 그를 나도 모르게 응원하고 있었다.
‘힘내세요.’
'나만의 언덕'을 오르기 위해 안간힘 썼던 내가 떠올랐다. 그의 얼굴에 내가 오버랩 됐다. 순간 땀인지 무언지 짭조름한 것이 얼굴을 흘러내렸다.
그는 천천히 하지만 쉬지 않고 언덕을 올라갔고, 나도 어느새 숙소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내가 사이클 운전자를 응원하듯이, 나의 레이스를 응원하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쫓아 목적지에 도달했던 나처럼, 우리는 누군가를 응원하며 자신의 길도 묵묵히 걸을 수 있는 것 아닐까.
비가 와 아쉬웠던 올해 여름휴가는 내게 짤막한 메시지를 선물하고 지나갔다.
어제 브런치 연재를 못해 죄송합니다.
휴가 기간이기도 하고, 잠시 정비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남은 여름, 늘 곁에서 묵묵히 응원해주는 무명의 응원자를 기억하며, 힘과 용기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저도 소중한 응원자를 떠올리며, 더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