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오월을 닮았군요 (박은실/한국 산문, 2023)을 읽고
“당신은 오월을 닮았군요.” 이 말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처럼 잇속을 내보이며 해주면 좋겠다. 데이지꽃 화분을 곁에 내려놓고 먼 곳을 바라보며 허공에 대고 무심히 해주어도 좋겠다. 달빛이 부서지는 짧디 짧은 봄밤에 슬그머니 주머니 속에 넣어주는 쪽지 편지 사연이라도 좋겠다.
브런치에서 만난 박은실 작가의 산문집을 읽었다. 그의 수필을 읽으면, 물 흐르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깊은 숲 속에 앉아 나를 마주한 기분이 든다.
작가에게 소중한 오월은 뒤꼍 화단의 함박꽃처럼 환하게 웃음 짓고 있다. 연둣빛 물결이 찰랑거리도록. 그녀의 오월엔 가장 싱그럽고 꿈 많은 시절이 드리워져 있다.
피천득 선생이 [오월]에서 노래한 대로 오월은 이제 막 찬물로 세수한 청신한 스물한 살의 얼굴이다. 문밖 세상이 온통 연두로 변해버린 날 아침, 찬물로 세수하고 거울 앞에 서서 물기를 채 거두지 않은 얼굴로 어금니가 보이도록 씩 웃어본다. 스물한 살의 얼굴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대로 상큼해 보인다.
박은실 작가에게 글이란 훔치고 들키는 것이라고 한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내 방 안을 보여주고 방 안의 소품 같은 내 속의 씨앗들을 한 개 한 개씩 야금야금 들키고 싶어서 글을 쓴다고.
‘간장 없이 맨밥만 먹었는데도 엄청나게 고소하네.’라며 입맛을 다셨으면 좋겠어. ([훔치고 들키고])
박은실 작가는 나태주의 [풀꽃]의 시구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그렇게 오래 사물을 자세히 관찰한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시간에, 카페에 앉아 가족 중 누군가를, 함께 사는 부군을 또는 매일 먹는 라면을. ‘과학 하는 마음으로’ 단단히 글을 전개한다.
작가의 상상력은 찜질방에 누워 세신사에서 몸을 맡기며 미끈한 피부를 갖고 싶어 하는 ‘생선의 착각’에 잘 드러나 있다. 일상에서 말없이 굴러가는 작은 톱니바퀴조차 자세히 오래 바라보는 섬세함이 물씬 드러난다.
‘라면을 먹으며’ 라면 발이 구불구불한 굽이굽이 돌아가는 고갯길이라고. 외팔이 조폭에게도 귀남이 종손에게도 나름의 사연과 추억을 함축해 놓은 저장고라 쓴다.
‘이따금 삶이 지루해 샛길로 빠져보고 싶을 때, 나는 라면을 뜨겁게 끓여 먹는다.’로 문장을 맺는다.
박은실 작가의 글을 읽으면 일상이 색채를 띠고 냄새를 풍기며 살아 움직여 나를 찾아온다.
그를 알게 한 ‘브런치’ 또한 글샘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생명체 같은 의미를 가진다. 매일 작가님의 눈과 귀와 입을 통해, 작고 소중한 것들이 새롭게 소성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