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인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문학동네 시인선, 2025)를 읽고
2부 옷
「실타래들」
손쉬운 실타래들이 대화를 나눈다.
“양말이 되거나 모자가 되거나 인형 또는 책갈피가 되어 그날 닥친 소용을 해나가야 하는데, 한때 꼬였다거나 깊숙한 곳에 뭘 꽂아 넣고 살았다는 게 중요할까? 직물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기에 아무렇지 않게 옛일을 입에 올린다.” 이 시를 읽고 마치 실타래를 처음 본 것처럼 낯설었다. 실타래들이 그들이 소용대로 쓰이기 이전, 그러니까 살 속에 어둠과 종잇조각만을 품었을 때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대단한 게 무엇일까. 나도 어떤 소용으로 쓰이기 이전, 그토록 웅크리고 불안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실타래들의 웅크린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것 같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들을 떠올리면서.
3부 집
「반려」
시인은 애완견을 위해 두건을 산다.
애완견이 싫다고 토를 해도, 똥을 싸고 두건을 물어뜯고 찢어버려도. 사랑을 담아 두건을 둘러준다. 다른 강아지와 나란해 보일 수 있도록. 애완견이 완구와 다른 행동을 하는 걸 보며 낯섦과 두려움, 그리고 실망과 체념을 느낀다. 살아있는 어떤 존재를 사랑한다면, 각오해야 한다. 그는 완구가 아니라는 것을. 여자는 똥색의 털과 똥색의 두건이 찍힌 사진을 어루만질 것이다. 나 역시 애완견의 뿔은 두건으로 가렸을 것이다. 나의 애완견이 완구가 아니라 각오했을지라도.
「꿈의 고백」
“친언니가 피자를 사 와서 내게 한 조각 먹이고 말했다/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외계인이었는지 몰라.”
피자는 아는 맛이지만 안 먹고 싶었던 맛. 시인은 피자 속 담긴 악독한 선생과 최초의 사랑을 떠올리고, 과거를 씹어 넘겨 버린다. 피자를 먹으며 우주여행을 하고, 그런 고민을 나누는 자매를 엄마 아빠는 반가워한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 겹치는 삶을 시인을 통해 위로받는다.
9부 꿈
「낙원 없이」 는 시인지, 시인의 에필로그인지 모르겠다.
‘지구’ 정도밖에 모르는 시인은 외계인이란 이름을 들고, 우주정류장에 가서 앉는다.
그곳에서 먼지나 쓰레기들처럼 보이는 형상들을 노래하는 시인. 시인은 행성이 된 쓰레기가 태워준다는 호의를 거절한다. 돌아오는 길이 꿈만큼 아늑하지 않을 거라 말하며. 나도 우주정류장에 앉아서, 지구에서 일어나는 먼지 같은 일들을 쓰레기라 부르는 호기를 부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