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1장 잊음으로부터 수용으로 (아들의 편지)

프롤로그 & 아들의 편지

by stone

프롤로그


어쩌면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낯선 병명이 가족의 언어로 들어오던 그날, 저는 ‘치매’가 단지 의학적 사실이 아니라 시간의 모양을 바꾸는 선언임을 몰랐습니다. 그로부터 열일곱 해가 흘렀고, 제가 홀로 엄마를 모신지는 꼭 십 년을 넘겼습니다. 그때부터 엄마와 저의 하루는 반복의 물결 위를 건너는 일이었습니다. 파도는 잠시 잦아드는 듯 하다가도 곧 같은 질문과 움직임으로 되돌아왔고, 내가 그 리듬을 읽어 자세를 세우지 않으면 금세 휩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저는 몸을 세우는 법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처음엔 물살에 떠밀려 반사적으로 급히 대답했지만, 차츰 호흡을 고르고, 말의 속도를 늦췄습니다. 그러면서 알았습니다. 그 반복이 엄마가 세상과 연결되는 마지막 다리임을 이해했습니다.


다리 위에서 엄마의 질문은 “지금 어디에 있지?”라는 신호였고, 내가 차분히 되묻는 일은 그 신호에 “여기 있어요”라고 자리(안심)를 만들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몇 번 반복되는지를 세지 않았습니다. 대신 목소리의 부드러움, 손을 잡는 힘, 눈빛의 흔들림 같은 ‘온도’를 살폈고, 그 온도에 맞춰 제 말과 몸을 조정하며 다시 시작했습니다.


돌봄은 종종 ‘비교’와 싸우는 일입니다. 병들기 전의 엄마와 지금의 엄마, 다른 가족의 방식과 나의 방식, 집과 시설, 사랑과 효율. 비교는 언제나 더 쉬운 결론으로 끌고 갑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다른 질문을 붙들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엄마에게 가장 인간다운 선택은 무엇인가.”


기억이 흩어진 자리에서 인간다움은 기억의 풍부함이 아니라 존중의 자리로 남습니다. 자신이 누군지는 잊어도, 제대로 먹는 법은 잊을 수 있어도 존중받는 감각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길을 잃을 수는 있어도, 손을 잡히는 안도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래서 10년 돌봄의 핵심은 ‘방법의 문제’였습니다. 병의 진행을 늦추는지를 넘어, ‘같이 살아내는 방식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의 문제. 저는 그 방법을 찾아 헤맸고, 그러다 보니 제 삶의 문장들이 하나 둘 바뀌었습니다.

“잘 설득해야지”에서 “잘 기다려야지”로, “제대로 하게 해야지”에서 “ 하게 하자”로, “고치자”에서 “곁에 있자”로.


치매와 관련한 기억이 상실되고 인지 기능이 무력화되면, 스스로의 판단에 따른 행동 결정은 점점 어려워집니다. 삶의 레버가 느슨해지고, 선택의 문이 잘 닫히지 않으며, 때로는 문 자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저 같은 보호자는 사실상 ‘대리 판단’의 자리에 놓입니다. 무엇을 드시게 할지, 언제 씻기고, 어디에 모실지를 정하는 일. 이 자리는 단순히 부지런함으로 버틸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잘못된 태도로 오래 서 있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의료적인 조치나 물리적인 방법이 필요할 때가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돌봄의 중심이 되는 순간, 삶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졌습니다. 몸을 붙드는 장치가 늘어날수록 마음이 설 자리는 줄어들고, 절차가 늘어날수록 관계의 말랑함은 닳아졌습니다. 저는 그 경로의 끝에서 너무 많은 보호자들이 탈진한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밤낮이 뒤바뀐 생활리듬과 수면, 예고 없는 배회와 낙상 위험, 배설·약물 관리, 24시간 관찰의 필요, 생업과의 병행, 보호자 건강의 붕괴, 가족 간의 역할 갈등, 사회적 지원의 한계, 제도적 장치의 빈틈…. 이 조건들이 겹치면 집이든 위탁시설이든 더 이상 가장 안전한 공간이 아닐 수 있습니다.


집이든 시설이든 돌봄이 지속 가능하려면 먼저 태도의 공학이 서야 합니다. 공간을 옮기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자세로 매일을 시작하고 끝낼 것인가’입니다. 보호자의 마음가짐이 변하지 않으면 공간을 옮겨도 돌봄의 피로는 옮겨갑니다. 반대로 태도를 바꿀 수 있다면, 같은 공간도 달리 작동합니다.


십 년의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며, 저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역할을 나누고, 시설과 협업하며, 안전과 존엄의 균형을 지키려는 그 자세가 돌봄을 오래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신적인 자기 극복, 즉 어떤 자세로 매일을 시작하고 끝내는지가 관건이었습니다.


저의 하루는 작은 의식들로 짜였습니다. 돌봄의 핵심은 속도를 낮추고 자극을 조절하며 안전과 존엄의 균형을 지키는 태도였습니다. 그 태도로 ‘지금-여기’를 잔잔히 안정시키는 미세한 진정을 거듭하는 것이 제겐 최선이었습니다. 그 작은 씨앗을 모아 하루를 버티는 일이 돌봄이었고, 저는 그 반복을 ‘의미 있는 돌봄’의 최소 단위로 삼았습니다.


제게 있어 의미 있는 돌봄은 두 가지 축 위에서 굴러갔습니다. 하나는 안전, 다른 하나는 존엄입니다. 안전은 넘어지지 않게 하는 기술이고, 존엄은 ‘사람답게’ 남겨두는 예의입니다.


기술은 도구와 동선, 주의의 배치에 관한 것이고, 예의는 시선과 호칭, 터치의 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기술이 예의를 이기기 시작하면 돌봄이 딱딱해지고, 예의가 기술을 압도하면 사고가 납니다.


균형은 매일 무너지고 매일 다시 맞춰야 했습니다. 저는 이 균형을 위해 제 감정의 온도를 먼저 살폈습니다. 화가 나 있지 않은지, 서두르고 있지 않은지, 통제하려는 마음이 앞서 목소리와 손놀림을 세게 만들고 그 긴장이 전염되어 상황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제 감정의 각도가 기울어 있으면, 엄마의 하루는 금세 비탈이 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작은 연습을 했습니다. 호흡을 여러 번 세고, 몸을 반 걸음 뒤로 물리고, 목소리를 한 톤 낮추는 연습. 이 사소한 수정을 통해 저는 엄마에게서 ‘저항’을 ‘반응’으로, ‘혼란’을 ‘멈춤’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다시 길을 찾았습니다.


저는 이 글을 해설서로 쓰지 않으려 합니다. 치매의 양상은 각각 다르고, 각 가정의 형편과 구조, 역사와 마음의 결도 저마다 다릅니다. 다만 저는 십 년 동안 몸으로 터득한 태도의 방법론을 담아보려 합니다. 장기 돌봄에서 의료적·물리적 조치가 ‘도구’로 남고 ‘목적’이 되지 않게 하는 설계, 보호자의 탈진을 늦추고 관계의 품위를 보존하는 일상의 기술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을 소모하는 대신 다르게 쓰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이 책은 한 아들의 일기장만은 아닙니다. 외롭고 고독했지만 인연을 놓지 않으려 했던, 그래서 매일 조금씩 배우며 바꿔 본 기록입니다. 저는 이 기록을 통해 돌보는 사람의 위치에서 당면하는 제반 문제들을 정돈해 보고 싶었고 가능한 해법들을 모색해 보고 싶었습니다. 돌봄은 누구나 ‘선한 의지’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설계이고, 훈련이고, 구조를 동반합니다. 그래서 이 글의 목적은 “버티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버틸 수 있게 바꾸어 보자고 제안하는 데 있습니다.


저는 수없이 흔들렸습니다. 밤마다 깊게 잠들지 못했고, 작은 소리에도 벌떡 일어났습니다. 때로는 자괴감이, 때로는 서러움이, 때로는 허탈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을 오래 붙들어 준 것은 희미하지만 분명한 하나의 확신이었습니다.


엄마가 모든 것을 잊어도, 내가 어떻게 대하는지는 남는다. 기억은 지워져도 대우의 온기는 몸이 기억한다.


따뜻하고 행복한 여생이 가능하다는 믿음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엄마와 제가 마련할 수 있는 행복은 거대하지 않습니다. 대신 촘촘합니다. 따뜻한 수건의 온기, 씻기는 손놀림의 박자, 숟가락이 입술을 지나갈 때의 리듬,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는 타이밍 같은 것들. 이 촘촘함이 하루를 지지합니다. 그리고 하루들이 모이면 남은 생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이 글이 어떤 분들에게는 집에서의 돌봄을, 다른 분들에게는 시설과의 협업을, 또 어떤 분들에게는 휴식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선택의 핵심은 언제나 같습니다.


사람답게, 오래. 이 두 마디가 우리 모두를 잃지 않게 해 줄 것입니다.


앞으로의 장들에서 저는 제가 쌓은 구체적인 방법들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오늘의 엄마’를 부르는 언어를 고르는 방법, 반복되는 질문의 자리바꿈 방법, 식사·배설·수면 같은 생리적 루틴의 재설계 방법, 안전과 존엄의 균형을 현실의 방 안에서 배치하는 방법, 보호자의 감정을 살피는 방법,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있는 기술의 연습 방법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병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를 남기는 기술입니다. 저는 이 기술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효과를 보장한다고 약속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길이 완전히 막혀 있지는 않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저의 십 년은 그 작은 증거입니다.


프롤로그를 이렇게 길게 쓴 이유는, 이 글이 독자에게 다가갈 통로를 마련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책은 도구를 줄 수 있지만, 도구를 쥐는 손의 떨림을 멈추게 하지는 못합니다. 손을 고르는 일은 독자의 몫입니다. 다만 저는 그 손이 너무 외롭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읽는 동안만큼은 누군가가 옆에서 호흡을 맞추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속도로 걸어주는 느낌을 드리고 싶습니다.


돌봄은 결국 둘의 일입니다. 기억을 잃은 사람과, 기억을 대신 붙드는 사람.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대답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대답이 ‘명령’이 아니라 ‘초대’가 되기를, ‘지시’가 아니라 ‘동행’이 되기를, ‘통제’가 아니라 ‘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


엄마는 오늘도 새벽을 먼저 건넙니다. 저는 뒤늦게 습관처럼 발을 내딛습니다. 문이 닫히고, 또 열립니다. 그 사이에서 저는 다시 묻습니다.


“오늘의 엄마에게 가장 인간다운 선택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아직 길 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저는 약속합니다. 비록 기억은 다 잃었을지라도, 엄마의 남은 여생을 따뜻하고, 가능한 만큼 평온하도록 저는 또 한 번 태도를 고쳐 잡을 것입니다.


이 글은 그 연습의 설계도이자, 동행을 청하는 편지입니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들의 편지


엄마


아침 창문을 열자 바람이 안방 커튼을 들추고 들어왔습니다. 햇빛이 부엌 바닥에 얼룩처럼 흩어지는데, 그 빛 속에 먼지가 춤추듯 떠다니더군요. 나는 쌀을 씻어 올려두고 엄마의 아침약을 챙겼습니다.

일상의 단순한 행위조차 이젠 내겐 작은 의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엄마, 나는 언제부턴가 웃음과 눈물이 번갈아 찾아오는 걸 막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누구야?라고 물으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이름을 불러주던 엄마가 어느 순간 내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가만히 응시하다 ‘누구세요?’라고 했을 때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요. 나의 당황한 모습을 느꼈는지 내가 다시 묻자 지긋이 바라보다 ‘귀한 사람 아이가’이라고 하셨죠. 그러다 기분 좋으면 단호하게 ‘귀한 아들’이라고 하셨고요. 또 더 기분이 좋으면 허리에 손을 얹고 몸을 흔들며 ‘귀여운 아들이지’라고도 얘기할 땐 웃음이 터졌습니. 이제는 엄마가 나를 어떻게 불러줘도 괜찮습니다. 나를 몰라 보든 ‘귀한 아들’이든 내가 아들로서 그저 엄마 곁에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 삶은 많이 좁아졌습니다. 친구들은 주말마다 여행을 가고, 모임을 통해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기는데, 나는 엄마 곁을 지키느라 개인적인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도 가끔은 자유로운 시간을 원하지만, 그 바람조차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엄마를 두고 집을 떠나는 순간, 불안감과 걱정이 끊임없이 밀려들어 맘 편하게 어디론가 갈 마음을 못 낸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이 모든 걸 그냥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불교의 연기(緣起) 사상처럼, 내 삶은 엄마와 분리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독립된 ‘나’란 없다는 사실, 내가 돌보는 순간 엄마의 삶이 이어지고, 엄마의 존재 속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처음에는 불공평한 운명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서로 얽혀 피고 지는 꽃처럼 자연스러운 일임을 압니다.


엄마, 우리의 시간은 웃고 울거나 울고 웃는 날의 연속이었죠. 잊을 수 없는 엄마의 모습이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장 앞에서 엄마가 갑자기 엄마의 18번이었던 ‘섬마을 선생님’을 구성지게 부르셨던 순간이요. 모두가 울고 있는데, 엄마는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목청껏 노래하셨지요. 나는 그 순간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의 노래가, 차라리 삶의 가장 큰 슬픔을 감당하는 또 다른 방식처럼 들렸습니다. 나는 그 앞에서 울면서도 웃었습니다. 그것이 엄마였으니까요.


오늘도 나는 부엌에서 아침상을 차리며 그때의 노래를 떠올렸습니다. 어쩌면 그 노래 속에는 ‘죽음도 삶도 결국 같은 흐름 속에 있다’는 무의식의 깨달음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나는 조금이나마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억이 사라지는 엄마를 돌보는 일 역시, 죽음과 삶이 맞닿아 있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창밖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 나는 그 가지와 잎이 따로 존재하지 않음을 봅니다. 줄기와 뿌리, 바람과 햇살, 흙과 비가 얽혀 그 나무를 이루고 있지요. 마치 우리와 같습니다.


엄마와 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호흡 속에서, 서로의 체온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생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엄마, 나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겠습니다.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순간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비록 고단하고, 때로는 많이 고독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엄마와 함께 살아 있음을 깊이 느낍니다.


지금 이 순간도, 엄마가 내 손을 붙잡고 졸린 눈으로 미소 짓는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압니다. 기억이 희미해도, 우리의 사랑은 여전히 지금 여기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