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잊음으로부터 수용으로 (아들의 메모)

아들의 메모

by stone

아들의 메모


엄마의 방 창가에 앉아 오래된 커튼 틈으로 흘러드는 햇살을 바라본다. 먼지 입자가 빛줄기 속에서 춤추듯 흔들린다. 그 작은 입자 하나에도 세계가 비친다.


나는 지난 십 년의 시간 속에서 ‘돌봄’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강을 건너며, 때로는 허우적거리고, 때로는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엄마는 기억을 점점 잃어가지만, 그 빈자리 속에 새로운 방식의 관계가 자라나고 있다.


나는 이제 그 순간들을 기록하려 한다. 기억이 사라지는 엄마 대신, 나의 눈과 손끝과 마음이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자각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단순히 돌봄의 일지를 넘어선다. 그것은 나의 사유와 감정, 그리고 삶의 태도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하루의 시작은 대개 비슷하다. 엄마가 새벽에 깨어 중얼거리며 거실을 서성인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곤히 자고 있는 나를 흔들어 ‘안나가나?’라고 묻고 저녁에는 주로 ’밥은 먹었나?’라고 묻는다. 대부분 새벽에 깨면 내가 일어날 때까지 또, 저녁에도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계속 연이어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처음엔 답하는 것도 지쳤다. 왜 똑같은 말을 수십 번 해야 하는가, 왜 아침잠이 많은 내가 잠을 포기해야 하는가. 그때마다 단잠을 깨 몸의 피곤함이 극심히 밀려오며 오늘도 이 몸을 이끌고 또 어떻게 견디지라는 생각에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울컥함과 억울함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볼 때, 그 안에서 두려움과 공허함을 읽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밥은 먹었나?”라는 말은 단순한 식사 확인이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확증이었다.


아들이 밥을 먹었는지 확인하는 순간 그녀는 여전히 삶 속에 자리를 가진다. 그렇지 않다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허공에 떠 있을 뿐이다. 나는 그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같은 대답을 반복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내 삶이 빼앗겼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친구들의 여행 사진, 직장의 회식, 취미활동, 만남의 제안조차도 내겐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엄마를 홀로 두고 나갈 수 없었기에, 나는 수없이 많은 가능성을 스스로 접어야 했다.

주말마다 약속을 취소할 때마다, 내 안의 젊음이 낡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 청춘을 돌봄에 양보한 채 살아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깨닫는다.


돌봄이 나의 가능성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사실을.


나는 타인의 아픔에 예민해졌고, 작은 변화를 읽어내는 눈을 갖게 되었으며, 한 사람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훈련을 했다. 그것은 다른 어떤 배움보다 깊고, 고통스러우면서도 값졌다.


가장 잊히지 않는 순간은 아버지의 장례식장 앞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는 아버지의 부재를 이해하지 못했다. 상주석에 앉아 눈물을 삼키던 나에게 엄마는 다가와 속삭였다.

“여기는 왜 있노? 얼른 집에 가자. 너 아버지 기다린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목구멍에 돌덩이가 걸린 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노랫가락을 뽑아냈다. “해당화 피고 지는~” 하고 구성진 가락을 추임새와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조문객들은 놀라 움찔했고, 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현실을 붙잡지 못하는 엄마,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려는 듯 노래를 흥얼거리는 엄마. 그 장면은 지금도 내 뼛속에 새겨져 있다.


엄마는 그때 죽음과 삶이, 괴로움과 기쁨이 다르지 않기에 슬픔을 견디기 위해 웃음을 택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순간을 인생 전체의 은유처럼 본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무너질 순간을 만난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웃을 수 있다면, 아니 노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엄마가 기억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 살지만, 엄마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떠올리면 안심이 된다. 기억이 사라져도, 노래는 남는다. 이름을 잊어도, 멜로디는 남는다.


존재란, 어쩌면 곡조처럼 우리 안에 흘러다니는 게 아닐까.


그날 나는 돌봄의 길에서 결코 되돌아갈 수 없음을 직감했다. 엄마는 이미 다른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고, 나는 그 길목에서 엄마를 붙들어야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의 이치는 내 삶을 설명해주는 가장 적확한 언어였다.


모든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얽혀 일어나고 사라진다.


엄마의 기억 상실도, 나의 돌봄도, 아버지의 부재도, 나의 상실감도—그 어떤 것도 단독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엄마의 망각은 나의 인내를 낳았고, 나의 인내는 엄마의 안정으로 되돌아왔다. 고통과 사랑은 서로의 그림자를 만들며 얽혀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기로 했다.


억지로 기억을 붙들어 세우려 하지 않고, 매 순간의 흐름 속에서 빛나는 작은 감각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이 수용의 길이었다.


아침 햇살이 부엌으로 스며드는 순간, 엄마는 식탁에 앉아 멍하니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을 바라본다. 창밖의 전선줄에 앉은 이름모를 새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참 예쁘다’라고 생각하는 표정으로 엄마의 얼굴에 잠깐 미소가 번진다. 실제로 새의 울음 소리가 생김새가 어떤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 미소의 온도다.


저녁이 되면 나는 엄마의 머리를 빗겨준다. 빗살 사이로 빠져나오는 흰머리 한 올, 그 가벼운 떨림 속에 세월이 숨어 있다. 엄마는 거울을 가만히 보다가 갑자기 ‘집에 안가요?’ 라며 거울에 비쳐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묻기도 한다. 나는 “곧 간대” 하고 대답한다. 엄마는 안심이 된 모습이었고 나는 울음을 삼킨다.


나는 종종 신경과학 책을 펼쳐든다. 기억이 어떻게 뇌 속에서 형성되고 소멸하는지, 어떤 신경망이 퇴화하는지 읽으며 엄마의 증상을 이해하려 애쓴다. 그러나 과학은 나를 위로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상을 설명할 뿐, 감정의 골짜기를 메워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과학적 이해는 또 다른 빛을 준다. 엄마의 망각이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세포와 전기 화학적 신호의 연쇄 속에서 일어난 필연임을 깨달을 때, 나는 비로소 원망에서 벗어난다. 그것은 불교의 연기와도 닮아 있다.


원인과 결과는 서로 얽혀 있고, 누구도 책임의 주체로 분리되지 않는다.


어느 날 저녁, 엄마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갑자기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 미소가 왜 지어졌는지는 나는 알 길이 없다. 물어도 좀 전의 장면에 대해 이미 망각의 강을 건넜을 것이기에. 그렇게 환하게 웃는 엄마를 본 것이 오랫만이었다. 그 순간 나는 치매의 고통 속에서도 웃음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억을 잃어도, 웃음이라는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을 지탱하는 마지막 불씨였다.


지금의 나는 알 수 있다. 수용은 체념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다른 얼굴이다.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 역시 그 과정 속에서 변모한다. 과거의 기억을 되돌릴 수 없다면, 대신 현재의 감각을 깊이 느낀다. 그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


나는 오늘도 창가에서 엄마와 함께 앉아 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든다. 엄마의 손을 잡으며 나는 속삭인다.

“괜찮아, 엄마. 우리는 지금 함께 있잖아.”

그 순간, 모든 슬픔이 잠시 물러난다. 그것이 연기(緣起)의 진실이고, 내가 이 길 위에서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