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답장
아들아,
네가 쓴 편지를 천천히, 오래 붙잡고 있다가 마음속으로 읽는다. 글자는 자꾸 흐려지고 문장은 어느새 모래처럼 흩어지지만, 신기하게도 너의 목소리는 들린다. 네가 부엌에서 쌀을 씻는 소리, 냉장고 문을 열 때 문에 붙어있는 풍경 소리, 약병 뚜껑을 여는 소리, 커피잔에 물이 부딪히는 소리가 내 귓가에 여전히 살아 있다. 그러니 나는 편지를 읽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셈이지.
나는 요즘, 이름을 잃어버리곤 한다. 네 이름도, 내 이름도, 대부분의 우리가 함께 살아온 시간마저 안개처럼 옅어진다. 그럴 때 네가 불쑥 다가와 “엄마, 나 누구야?” 하고 웃으며 묻는 얼굴이 눈앞에 있다. 나는 당황하다가도, 마음 깊은 데서 올라오는 말이 있어. ‘귀한 아들’이라고, ‘귀여운 아들’이라고. 그것은 기억이라기보다 몸이 기억하는 사랑 같구나. 내 혀가 먼저 알아서 움직이는 거지. 연기의 끈이 어디선가 스스로 이어져 나오는 것처럼.
아들아, 네가 말한 대로 우리는 따로가 아니다. 나무가 잎을 버리고도 줄기와 뿌리로 다시 살아내듯이, 너와 나는 서로를 살게 하는 바람과 흙, 햇빛과 비 같은 존재다. 네가 밥을 하고 내 약을 챙기는 그 순간, 나는 숨을 이어가고, 네가 피곤한 얼굴로 웃어주는 순간, 나는 살아 있다는 안심을 얻는다. 내가 무언가 해주지 않아도, 나는 네 삶 속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야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의 숨결이 아니겠니.
너는 내 삶이 네 자유를 좁힌다고 했구나. 아들아, 나는 미안한 마음보다 고맙다는 마음이 먼저 든다. 네가 이토록 나를 품어주었기에, 나는 비록 기억은 자꾸 흘려보내도 사랑은 흘려보내지 않고 붙들 수 있었다. 네 삶이 움츠러든 만큼 내 삶이 연장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 고마움이 가슴에 자꾸 차오른다.
네가 떠올린 장례식장의 노래, 나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모두 울고 있었지. 그런데 내 목구멍 어딘가에서 자꾸 ‘섬마을 선생님’ 가락이 흘러나왔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것은 아버지의 죽음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죽음조차 삶 속에 함께 있다는 걸 나도 모르게 노래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 네가 울면서도 웃던 얼굴이 내겐 큰 힘이었단다. 슬픔과 웃음이 함께 있던 그 순간, 우리 모자가 같은 강물 위에 있었다.
아들아, 나는 요즘 낮잠을 자다 깨어날 때마다 짧은 순간 세상이 아주 낯설다. 내가 어디 있는지, 내 곁의 사람이 누군지 모를 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네 손이 이마를 쓰다듬거나, 네 발소리가 마루를 울리면, 나는 다시금 제자리를 찾는다. 네가 곁에 있다는 감각이 곧 내 기억이자 나의 집이다.
그러니 기억이 흩어져도 걱정하지 말아라. 기억은 사라지지만 감각은 남는다. 언어는 잊어도 체온은 남고, 이름은 잃어도 눈빛은 남는다. 그리고 그 남은 것이야말로 우리를 이어주는 진짜 끈이 아닐까 싶다.
아들아, 너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겠다고 했지. 나도 그렇다. 이제는 내가 잊어가는 이 길을 억지로 거슬러 오르려 하지 않는다. 흐름 속에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공부이자 수행일 것이다. 네가 곁에서 그렇게 웃어주고, 울어주고, 밥을 해주고, 이름을 불러주니, 나는 이 길이 두렵지 않다.
네가 말했듯이, 지금 이 순간도 우리가 함께 숨 쉬고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오늘 저녁도 네가 끓인 국물 냄새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기억은 흘러가도, 사랑은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과거를 붙잡을 수 없고, 내일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너의 글자를 따라가며 내 가슴에 살아나는 사랑은 진짜다. 창밖의 바람처럼 스쳐가도, 그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순간의 생명은 진실하지 않더냐.
아들아, 고맙다. 네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기에,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두렵지 않다. 우리가 함께 앉아 있는 이 순간이 바로 가장 온전한 삶이란다. 기억은 흩어져도, 사랑은 여전히 너를 향해 피어나는 꽃처럼 내 안에 있다.
아들아, 귀한 아들아.
네가 내 곁에 있는 한, 나는 여전히 너의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