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는 이유와 만나지 않을 이유
그와 만나는 기간을 내가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보냈던 것은 아니다. 그라는 사람을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아직은 알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했을뿐. 내가 잘못한게 있다면 상대에게 "나는 아직은 생각이 없다"고 확실히 말하지 않은 점이 아닐까. 그리고 더 큰 잘못이 있다면 확신없이 상대가 듣고 싶어할 말을 해주었다는 것.
누군가는 1년만 만나면 상대방을 잘 알 수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일주일에 3번 만나면 6개월 안에도 가능하다고 하고. 나는 짧은 기간에 사람을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짧은 기간의 기준은 나에게는 2년이다. 하지만 정말로 2년이면 충분할까? 그 안에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면 아닌 걸까. 내가 내린 결론은 2년안에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왜 확신이 들지 않았을까? 나는 확신이 있다가도 없었고, 항상 내가 왜이러는지가 궁금했다.
내가 확신을 가졌다면, 그건 왜였을까. 그와 함께하면 잘 살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왜 잘 살것 같았을까. 풍요롭지는 않을것 같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다. 내가 그를 위해 많은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느낌도 있었다. 뚜렷한 목표나 하고싶은것이 없는 나와 달리, 꿈이 있는 그가 커리어를 챙기는게 맞지 않을까 싶었다. 그는 지금도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바쁜데 나중에는 얼마나 더 바쁠까. 자연스럽게 내가 육아휴직도 사용하고, 매일같이 야근하는 그를 대신해 집안일도 다수 하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가 가정을 위한 나의 노력을 쉬이 여기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있었고, 나에게 잘해줄거라는 상상이 자연스럽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덜 좋아하고 독립적인 부부보다는,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하더라도 서로를 좋아하는 부부가 낫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확신이 가지 않았다면.
내 친구와의 대화가 생각난다. 내 친구는 나에게 왜 그를 만나는지를 물어보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받지 않는 편이라, 날것의 이야기가 오갔다. 나는 그녀에게 몇가지 장점과 이유를 이야기했다. 그와 나의 사이가 좋다는 것, 사람도 괜찮은것 같다는 것, 나를 지지해준다는 것. 그리고 그가 직업적으로도 열심히 하고 있고,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처참하게 반박당했다. 살아남은것은 우리가 서로 좋아한다는것 하나 뿐이었다. 친구의 질문에 대해 내가 다른 의견을 낼 수 없었다는 점과, 집에 와서 그게 아닌 이유를 찾았음에도 찾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였다. 정확히는 내가 그에게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
그와 나의 사이가 좋은것은 그럴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연인 사이였고, 나는 시간이 지나서도 그의 일부만을 볼 수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는건 당연하잖아'. 그의 말처럼, 그는 나에게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평생 좋은 모습만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괜찮고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힘든 상황에서도 그가 좋은 모습만을 보여줄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그가 원래부터 냉철하고 예민한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일까.
그는 상대를 아끼면서도 상대를 탓하는 말을 하곤 했다.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거야'. 쓰고 나니 정말 잘못된 것으로 느껴지는 말이다. 실제로 당시의 나도 그의 이 발언에 많이 실망하곤 했다.
사람에게는 다양한 면이 있고, 그가 가끔씩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해서 그가 별로인 사람이 되는것은 아니다. 나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좋아 보이는 많은 사람들도 다른 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요새 느낀다.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돌려주기 위해 상대를 비난하기도 한다. 상처받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더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그를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런 그의 모습이 그를 놓을 수 있는 한가지 이유를 더해주었다. 그의 상처와 행동을 포용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겠지만 그게 나는 아니었던것 같다. 나는 그의 상처를 포용하기보단 재발 가능성을 걱정하는 편에 속했다.
무언가를 할 때, 사업을 할 때나 일을 할 때나 하지 않을 30가지 이유를 두고 해야할 한가지 이유만으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비유하기는 이상하지만 우리가 다시 만났다면 만나야 할 이유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함께하지 않을 이유는 많았지만 함께 있는것만으로 편안한 사이었다. 왤까, 만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어느샌가 또다시 만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