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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Jul 18. 2024

<셜록주니어>, 현실을 상상에 맡겨두지 않을 것

버스터키튼 <셜록주니어>, 1924

 우리는 때때로 ‘만약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다면?’, ‘만약 내가 복권에 당첨된다면?’과 같이 지금 당장의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의 가능성을 상상해 보기도, 영화를 보며 내가 영화 속 여러 인물 중 한 인물이 되어보는 즐거운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처럼 영화 <셜록 주니어> 속에서도 깜빡 잠든 사이 영화 속 한 인물이 되어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쉽고 멋있게 해내는 행복한 상상을 하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Sherlock . Jr> , 1924

 시골의 한 극장에서 영사기사로서 일하고 있는 버스터는 남몰래 탐정의 꿈을 꾸고 있다. 뭐든지 척척 해결해내고 사랑도 멋지게 쟁취하는 모습을 꿈꾸고는 하지만, 지금 현실에서의 그는 마냥 어설프기만 하다. 케이트 맥과이어에게 용기 내어 구애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그가 썩 맘에 들지 않는 눈치이고, 그러던 와중 케이트를 사랑하는 또 다른 남자인 워드가 누명을 씌우는 바람에 버스터는 시계 도둑으로까지 몰리게 되며 그녀 앞에 부끄러운 모습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하다가 깜빡 잠든 버스터는 상영하고 있던 영화 속에 주인공 탐정 셜록 주니어로서 등장하며 사건들을 멋있게 해결해내고 사랑까지 쟁취하는데, 잠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 후에도 그는 영화 속 장면들을 하나씩 따라 하며 영화 속처럼 멋지게 사랑을 쟁취해 보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주인공 버스터의 꿈과 현실을 유쾌하게 보여주는 <셜록 주니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구운몽’과 같은 액자식 구성의 소설들이 떠오르는 ‘영화 속 영화’의 구성이었다. 이러한 구성으로 우리는 <셜록 주니어>에서는 시골 극장에서 영사일을 하는 버스터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볼 수 있지만, 더불어 그가 영화의 주인공 탐정 셜록 주니어가 되어 겪는 또 다른 사건들을 볼 수도 있다. 이는 한 영화 속에서 다양한 시공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며 그의 꿈과 현실의 괴리를 더욱 선명하게 느끼고 비교해 볼 수 있게 해주는 듯했다. 그는 직접 영화 속 장면에 뛰어들려다가 장면이 전환되며 여기저기 부딪혀 뜻밖의 웃음거리를 선사하기도 하고 영화 속 탐정이 되어 설원에 곤두박질치기도 하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그의 순수함과 탐정 셜록 주니어가 된 그의 이야기를 더 유쾌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으며, 해당 영화가 코미디 장르임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었다.


 <셜록 주니어>는 1924년 버스터 키튼이 제작한 흑백영화로, 무성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코미디 영화로 평가받고 있지만, 다양한 색과 사운드 효과가 포함된 영화가 익숙했던 나에게는 처음에 꽤나 낯선 작품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인물의 대사를 비롯한 다른 상황 속 여러 소리와 색채가 생략되어 있음에도 전혀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다양한 색을 보유하고 있던 것들이 모두 일종의 명암 차이만을 두고 모두 같은 색으로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사물의 형태나 인물의 행동 자체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고, 동일한 색으로 나타나는 인물들을 사이에서는 다채로운 색의 다양한 옷을 입은 인물들을 볼 때 보다 괜스레 더 많은 연관성과 유대감이 느껴졌다. 흑백 무성영화로서 색채뿐만 아니라 자동차 소리나 물이 흘러나오는 소리 등 실제 상황이라면 충분히 들렸을 만한 소리 또한 나타나지 않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함께 흐르는 배경음악을 통해 전체적인 분위기와 상황을 느낄 수 있었으며, 물을 맞고 놀라는 인물의 표정이나 홀딱 젖은 인물의 옷 등의 시각적인 요소들을 통해 충분히 소리가 없는 아쉬움을 채울 수 있었다. 이를 보며 루돌프 아른하임이 현실의 이미지와 영화의 이미지를 비교하며 예술로서의 영화의 가능성과 영화의 기본요소를 이야기하였던 것이 떠올랐고, 그를 바탕으로 <셜록 주니어>를 바라보니 색채의 부재와 소리의 부재, 시공간 초월까지 영화의 부분적 비현실성과 우리의 환영을 체감하게 해주며 예술로서의 영화의 요소와 가치를 그 어떤 것들보다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 뒤에도 버스터는 영화에 의존해 케이트의 앞에서 영화 속 인물의 행동을 따라 하지만, 이내 따라 할 수 없는 장면이 나오자, 행동을 멈추고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는 멈칫하는 버스터의 모습에서 끝이 나지만 나는 이후 버스터가 영화 속 장면에 의존해 행동하던 것에서 벗어나 지금의 현실에 집중해 자신의 마음과 상황을 살피고 케이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행동을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이어갔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행복한 꿈을 꾸거나 상상을 마친 뒤 돌아와 다시 현실을 마주하였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첫 번째는 행복한 꿈과 냉정한 현실 사이 괴리감에 절망하고 허망해하는 경우, 두 번째는 꿈이 너무나 행복했던 나머지 정말 현실에서도 꿈에서 겪었던 바와 같이,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경우, 세 번째는 행복했던 꿈을 잊지 못하고 현실을 외면한 채 꿈만을 바라보거나 그것에 의존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 이 세 가지 경우 중 버스티는 마지막에 경우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꿈속에서 탐정이었던 그는 각종 단서와 도구를 동원해 용의자를 수색해 나가고 사건을 해결하려 들지만 현실의 그는 시계 도둑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썼음에도 적극적으로 해명하거나 오해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며, 결국 여자친구의 노력으로 누명을 벗고, 현실로 돌아온 것을 깨달은 후에도 계속해서 영화에 의존하여 인물을 따라 행동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꿈은 너무나 달콤하며 때로는 우리를 아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의 우리를 외면하거나 등한시하고, 큰 인내와 노력 없이 꿈과 같은 상황을 이룰 수 있다고 오해하게 만들기도 한다. <셜록 주니어>를 통해 우리는 흑백 무성영화의 진수와 코미디의 역사를 엿볼 수 있음과 동시에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과 이상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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