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성격은 때때로, 내 기준을 조용히 무너뜨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가진 ‘엄마의 기준’이 얼마나 단단한지, 혹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아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 생애 첫 차이자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멋진 새 차를 샀다.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어느 날 식당에서 나오는데, 큰 트럭이 아이의 차 옆에 바짝 붙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보고 있는데도, 그 트럭이 아이의 새 차에 스크래치를 냈다고 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물었다.
“리포트 썼어? 보험 처리해야지.”
아이는 말했다.
“그냥 가라고 했어.”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랬어? 새 차인데!”
그날도, 며칠 뒤에도 나는 같은 질문을 했다.
아이의 대답은 늘 같았다.
“엄마, 그 사람은 트럭 운전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것 같았어.
그 사람한테 부담 주고 싶지 않았어.”
아이는 덧붙였다.
“차는 어차피 언젠가는 다 긁히게 마련이야.
다음에 또 상처 나면 그때 한꺼번에 고치면 돼.”
그 말을 듣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가진 기준은 정확했다.
하지만 아이가 가진 기준은... 조금 더 넓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치려는 마음이
조금씩 물러나는 것을 느꼈다.
아이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아이가 나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