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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여사 Apr 22. 2024

롤러코스터? 내가 아니라 내 호르몬이 탄다고요

날뛰는 에스트로겐

 여성 호르몬이 부족한 게 아니었어!


 2019년 4월부터 호르몬제 복용을 하면서 차차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약 복용을 잊어버리고 거르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호르몬을 더 이상 복용하지 않아도 전혀 증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에트르로겐 수치를 검사해 보니 256 pg/mL 가 나왔다. 보통 폐경 후 호르몬치료를 해도 에스트로겐 수치가 100을 겨우 넘기거나 그 미만이기 때문에 이것은 난소기능이 다시 돌아왔다는 신호였다. 안도하는 마음으로 호르몬치료를 중지하고 별다른 증상 없이 일상을 보냈다. 


 다음 해인 2020녀 6월경 어느 날, 머리가 무겁고 귀에 이명이 들리고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왔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보진 못한 피로감이었다. 물먹은 솜 같다는 게 뭔지 제대로 실감했다. 손을 들기도 어려울 정도로 몸이 무거웠다. 겨우 출근한 나는 갱년기증상이 다시 왔나 보다 생각하며 호르몬검사를 했다.

 이번에는 에스트로겐이 무려 503 pg/mL이었다. 에스트로겐이 제일 높은 배란기 때도 200~300 pg/mL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너무나 높은 수치였다. 에스트로겐을 분비하는 종물이 있는지 우려가 되는 수준이었다. 이번에는 호르몬을 낮추기 위한 치료를 했다. 일시적으로 난소기능을 저하시키는 GnRH agonist(생식샘자극호르몬 분비호르몬) 주사를 맞아 에스트로겐 분비량을 낮추자 다시 증상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후에도 에스트로겐 분비는 계속 들쭉날쭉하여 적절히 호르몬을 투입하기도 하고 분비를 억제하기도 하면서 폐경이행기를 보내다가 2022년부터는 안정적으로 폐경에 접어들어 지금까지 꾸준히 호르몬 치료를 하고 있다.


폐경이행기 동안 실제 나의 에스트로겐 수치의 변화


결국 끝은 있다

 돌이켜보면 2017년부터 서서히 시작된 폐경이행기는 약 5년간 다양한 증상으로 나를 괴롭혔다. 어떤 때는 어깨통증으로, 어떤 때는 수면부족으로, 또는 감정기복으로 말이다.  호르몬 복용을 안 하면 짜증과 분노에 휩싸이는 나를 보면서 어떤 게 진짜 내 모습이었는지 혼란스러웠던 때도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짙은 안갯속을 기약도 없이 걷다가 이제야 걷힌 느낌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모든 것에는 끝이 있었다. 


 오늘 내 진료실에 찾아와서 여러 가지 증상들을 호소하면서 절망에 빠져있는 갱년기 여성 동지들에게 이 모든 것에는 분명히 끝이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행기의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최대한 상흔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무작정 참고 견디더라도 이 모든 것은 언젠가 끝이 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너무 많은 상처를 입는다면 그 끝에 도달하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일 것이다. ‘나는 그냥 자연스럽게 갱년기를 맞이하고 싶어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보면 우려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그건 내가 그 누구보다도 처절한 갱년기를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갱년기 증상이 거의 없이 무난하게 보내는 분들도 많다. 그런 분들까지 꼭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분들은 월경통 없이 월경을 하는 여성들처럼 매우 운이 좋은 경우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모든 여성들이 그런 갱년기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갱년기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무조건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예를 들어 감기 증상이 가벼울 때는 적절히 휴식을 취하고 수분을 보충하면 좋아질 수 있지만 폐렴이 의심될 정도로 심한 발열이나 기침 가래 등의 증세를 보인다면 당연히 의사의 진찰을 받고 약을 복용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갱년기 증상도 심하면 당연히 치료를 받아야 한다. 내가 만약 갱년기 전문의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 긴 시간을 견뎌내었을까 상상만 해도 정말 끔찍하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많은 갱년기 여성들이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살펴보고 적절한 전문가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들의 몸과 마음의 안녕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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