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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Jan 20. 2024

인프피의 상상

좋아하는 or 잘하는

직장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퇴직 후의 삶을 불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특별한 자격증이나 기술이 없는 나 역시 비슷한 처지다. 게다가 늘 걱정과 공상을 달고 사는 극단적 인프피 성향이 틈틈이 퇴직한 주위 사람들의 삶을 살피게 한다. 아주 드물게 퇴직 후 성공했다는 지인들의 얘기가 들릴 뿐, 대부분은 그냥 뭐 그렇다.


정년이 연장될 거라는 소문이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 사기업은 대체로 60세가 정년이다. 앞으로 6년 남짓 남은 셈이다. 그동안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만 들뿐이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치킨 가게 아니면 저가 커피점이 좋을까. 이 업종들은 경쟁이 심해서 쉽지 않다고 하던데. 그냥 운동삼아 택배 기사나 드라이브도 할 겸 개인택시 기사가 나을까. 쉽게 지치는 내 체력을 고려한다면 이 업종들도 녹록지 않을 것 같다. 


오랜 시간 골똘히 생각했다. 우선 30년 가까이 회사를 열심히 다녔는데도 퇴직 후의 삶을 또 걱정해야 한다는 현실이 참 냉혹하다. 평균 수명까지 더 늘어난다고 매스컴에서 간간히 떠들던데 이거야 원. 자식은 딸 하나이고 다음 달 대학 졸업이라서 걱정 하나는 줄었다. 다행히 아빠보다는 엄마 성격을 닮아서 사회생활을 잘할 것 같다. 문제는 나다. 나만 잘하면 될 것 같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무엇을 좋아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잘하는가 또는 잘할 수 있는가'

좋아하는 것은 상상, 공상, 음악과 영화 감상, 역사 유적지 탐방,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아내와 카페에서 브런치 먹기.


역시 관건 '무엇을 잘하는가와 잘할 수 있는가'이다. 별로 없다. 아니 없는 거 같다. 하지만 누구의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은 잘하는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해서 또 생각해 봤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없다.


고뇌의 시간이 고요한 강물처럼 흘러 흘러 드디어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잘하는 것이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냥 해보자. 나는 문과 졸업생답게 역사와 지리에 관심이 많다. 특히 일반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과 기록된 역사 뒤편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좋아한다.


오랑캐와 왜놈이 쳐들어와서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의병들이 분연히 일어나서 용감히 싸웠다는 뉴스 보도식의 토막 지식이 아니라 그런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숨겨진 진실을 알고 싶다. 고구려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했다고 배웠지만 그 평양의 위치가 정말 한반도인지 진실은 중국대륙의 또 다른 지명, 평양인지 알고 싶다. 교과서에서 흔히 오랑캐로 불리는 여진, 거란, 선비족들이 어쩌면 우리와 먼 친척뻘이 아닐까라는 상상도 해본다.


일제 식민 사학의 후예들이 주장하는 편협한 역사관을 뛰어넘어 선사시대, 고조선, 부여, 옥저, 동예, 삼한,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발해의 진짜 강역을 밝혀내고 진실된 역사와 인물을 찾아내고 싶다. 러시아 역사학자, 유 엠 부틴은 말했다. '중국과 일본은 없는 역사도 만들어 내는데 한국은 어째서 있는 역사도 없다고 하는가. 도대체 알 수 없는 나라이다'.


일부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자신의 학식을 젊잖은 척 슬며시 과시하기 위해 중국의 한자성어를 언급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특히 삼국지나 초한지에 나오는 사자성어는 일반인들도 심심찮게 말하고 그 속에 나오는 인물들을 영웅시한다.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이나 취미로 이웃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먼저 우리나라의 역사부터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역사에도 관우, 조자룡 못지않은 을지문덕, 강감찬 장군이 있다. 하지만 우린 우리의 진짜 역사와 인물에 대해서 무지해도 너무 무지하다. 부끄럽다.


퇴직 후에 할 일을 정했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일이다. 관련 자격증을 준비 중인데 책임감과 함께 좋아서 하는 공부가  재밌다.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어디를 가든 역사 유적지에 눈길이 간다.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다채로운 문화를 공부하면 할수록 흥미롭고 자부심이 생긴다. 퇴직 후에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 마니아가 결국에는 전문가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 by  해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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