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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맘 Jun 03. 2024

살 빼기는 결국 빼기다

68 빼기 6은 퇴직 후 변한 지금의 몸무게다.

사람마다 적정하다고 느끼는 만족의 숫자는 다르다.

현역에 있을 때 체중계의 68 숫자와 마주쳤을 때의 자괴감을 생각하면 만족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살 빼기는 음식들이 놓인 식탁 앞에서 할까 말까 고민하는 영원한 선택형 숙제였다.




앉아 있는 건 ‘제2의 흡연’이라고 말할 정도로 불편한 진실이다.

출근해서 컴퓨터의 전원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의자와 한 몸이 되곤 했었다.

화장실로 향하는 거부할 수 없는 몸의 신호나 탕비실의 커피를 보충받는 걸음이 움직임의 전부 일 경우도 있었다.


오전 업무의 끝자락에 만나는 점심시간은 왜 그렇게 후다닥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기다림 없는 바로 착석만을 바라며 식당에서 카페로 종종걸음을 옮기곤 했다.

의자에 앉아서 해야 하는 연동운동과 동의 없이 제공되는 간식들을 몸속 소화기관이 좋아했을 리 없다.



결국 동료들과의 당일여행 뚜벅이 코스에서 무릎 때문에 민폐 걱정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포천 산정호수 둘레길에서 내 걸음은 동료들과 점점 벌어졌고 아쉽게도 극기훈련 같았던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본격적인 체중감량의 다짐은 남편의 안식휴가를 계기로 시작되었다.

유료운영시간을 피해서 공영주차장에 매일 새벽에 차를 세우고 남산둘레길을 함께 걸었다.

남산케이블카 방향에서 국립극장 방향으로 왕복 6.8킬로미터의 남산북측순환로 길이다.


남편은 빠른 걸음으로 반환점을 돌아오다가 마주 오는 느린 걸음의 나와 합류하는 방식을 택했다.

나만의 절반 걷기였지만 서로의 속도에 간섭하지 않고 공평해서 좋았다.

하지만 갱년기에 늘어난 체중은 운동만으로는 기대만큼 내려오지 않았다.



추가적으로 현명한 방법을 생활 속 빼기에서 찾기로 했다.

다이어트 효소를 먹거나 붓기에 좋다는 호박즙을 먹는 더하기 개념이 아닌 나 만의 반전 전략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마트의 장보기 카트 안에서 과자를 덜어낸다.

50대와 친구 같은 맛동산, 꿀꽈배기, 꼬깔콘 같은 추억의 과자들과 이별해야 한다.

다른 브랜드 과자도 딸아이와 아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집으로 데려와서는 안 된다.





둘째, 오르막에서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동시에 마주했을 때 에스컬레이터를 빼고 주저 없이 계단 앞에 서야 한다.

숨이 차고 약간의 뻐근함으로 완성되는 마지막 계단이 차별화된 자존감으로 나를 지켜주었다.

3호선 약수역 환승구간에서 좁은 에스컬레이터 앞에 줄지은 사람들과는 달라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빼기는 하루 세끼에서 한 끼를 덜어내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

"원시시대에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다 먹었을까요?"


너무 풍요롭기 때문에 불행할지도 모르는 요즘은 두 끼만으로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6시 이후의 저녁식사를 빼면서 고단했을 나의 소화기관에 휴식을 주기 시작했다.

잦은 약속이나 유혹이 없는 퇴직의 시간은 그런 다짐을 방해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당뇨초기약을 먹고 있는 남편도 간헐단식을 함께하면서 식사준비의 분주함으로부터 자유로운 '저녁이 있는 삶'을 경험했다.





의도한 불편함과 기분 좋은 배고픔을 즐기면서  체중은 줄었고 걸음걸이자신감도 돌아왔다.

퇴직 후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뭐냐고 묻는다면

건강한 체중감량이라고 답하고 싶다.


살 빼기는 더하기보다는 결국 빼기가 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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