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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맘 May 20. 2024

다른 문이 열린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서 말하는 인연의 소중함을 느끼고 는 요즘이다.

다른 사람의 지식세상을 공유하고 그들만이 견뎌낸 삶의 날씨 속에서 조금 더 다양한 사고와 이해를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30년 가까이 공조직에 있던 나와 다르게 남편은 민간기업에 재직 중이다.

남편의 현실적인 조언은 간혹 냉철하면서 신선했고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산책이나 대화의 중심에 끼어든 '퇴직'이라는 주제로 남편은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모아놓은 돈깨나 있는 퇴직한 선배들을 보면 현실에 안주하면서 무리 지어 배낭을 메고 산을 찾더라고,

기존에 편한 직장동료 혹은 퇴직 선후배와의 관계에만 매몰되는 경우가 많던데 그건 발전이 없어 보이더라

당신은 과감하게 새로운 관계나 배움에 끼어드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해”



언젠가 직무교육 중에 모 강사님도 우스개 소리처럼 하신 말씀이 함께 떠올랐다.

“공무원이 퇴직하면 본인이 몸 담았던 공조직 울타리 주변 어딘가에서만 맴돌게 되는 특성이 있어요”

그때는 익숙한 인연이 주는 자연스러운 끌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퇴직 후 오래된 익숙한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꾸 남편의 말이 따라왔다.

이제는 명함과 직함이 사라져 조직을 빠져나온 나와 모임의 관심사에는 온도차이가 느껴졌다

○○국장이 이런 사람이었다더라 등등

함께 성토하고 공감의 눈빛을 발사했지만 왠지 내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간섭처럼 느껴졌다.

행복은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을 모를수록 커진다는 말이 생각났다.



새롭게 만난 커뮤니티 활동에서는 달랐다.

ZOOM으로 만나는 새벽 5시의 온라인 자기 계발 커뮤니티는 신선한 자극과 활력을 주었다.

강제성이 1도 없는데 함께하는 힘이 나를 이기도록 만들어 주었다.

바닥난 자존감의 회복과 나에 대한 믿음의 그래프를 올려 줄 만큼 스스로에게 흡족했다.



나 다운 미라클모닝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새롭게 두 사람의 일생이 운명처럼 내게로 왔다.

전혀 다른 장소에 살고 있었고 나이 차이도 있었지만 공통 관심사가 서로를 당겨 주었다.


온라인에서의 아쉬운 한계점이 오프라인 만남으로 이어지면서 시너지효과를 누리게 되었다

익숙한 닉네임이 주는 친근함 탓에 첫 대면에서도 어색함이 없었다.


서로를 실물영접한 우리 셋은 함께 읽은 책을 각자의 생각을 담아 섬세하게 이야기했다.

낯설고 버벅거리던 디지털 입문 에피소드에 격하게 공감했다.

매일 운동과 감사 일기 쓰기  등 소소한 인증 챌린지가 주는 작은 성공에 감격하느라 불필요한 대화의 피로감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명예퇴직 시점은 막 코로나19가 종식되어 먼저 와 버린 10년의 디지털세상을 만난 해였다.


챗GPT라는 어마어마한 놀라운 녀석이 나타나기도 했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상을 얼마만큼 새롭고 놀랍게 변화시킬지 예측이 어려울 정도다.


식당에서 서빙로봇의 움직임이 더 이상 낯선 볼거리가 아닌 지 오래다

매장마다 붙박이 된 커다란 키오스크가 이제는 테이블 위로 작게 올라와 일상의 간극을 좁혀간다.

뒷사람의 눈치를 보며 키오스크 앞에서 작아지기에는 우린 아직 젊고 기대수명은 너무 길다.

갑자기 디지털세상을 만났을 때, 퇴직자의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도록 준비해야 할 이유다.



내가 꼴찌가 되더라도 상관없다는 마음의 여유가 새로운 관계에서 문을 여는 열쇠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것이 또 다른 세상의 열린 문이 되어 줄 것이다.

퇴직의 문은 결코 닫힌 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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