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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맘 Jul 29. 2024

미역국 대신 엄마김밥

딸의 생일 D-1

“불고기 해줄까? 돼지갈비 해줄까?”

“돼지갈비요”

단골 정육점 앞에서 전화수화기 너머의 딸과 밸런스게임을 하고 있다.

취향이 뚜렷한 MZ세대인 딸의 생일 상차림은 내 맘대로 잘 안된다.


“참 엄마, 수박케이크 만들 거니까 제과점 케이크 말고 수박도 한 덩이 사가지고 오세요”

“수박케이크?"

그뿐만이 아니다.

생일날 먹고 싶은 건 미역국 대신 엄마의 김밥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딸이다.




더운 여름에 음식을 준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외식으로 편하게 지갑만 열면 좋겠지만 오랜만에 엄마찬스를 딸에게 주고 싶었다.

정육점을 빠져나와 다시 김밥재료와 수박을 사기 위해 근처 마트로 향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돼지갈비는 찬 물에 담갔다가 애벌 삶기를 했다.

다시 압력솥에 갖은양념과 함께 부드럽게 고기를 익혔다.

깊은 냄비솥에 옮겨 담은 갈비와 둥글게 깎은 무와 당근 등 야채를 넣고 양념이 베이도록 약불에 서서히 졸였다.


지켜보던 딸은 주방을 들락날락하며 언제쯤 완성되는지 기대하는 눈치다.

시판용 갈비양념 소스에 나만의 레시피 양념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단짠 매콤한 일품 갈비찜이 완성되었다.

평소 저녁밥을 안 먹는 딸아이는 돼지갈비찜 접시에 코를 박고 먹었다.




생일아침엔 딸의 취향을 존중해서 미역국 대신 결국 김밥을 말았.

전날 불려놓은 현미와 백미를 2:1로 전기밥솥에 밥을 지어 참기름과 깨소금, 천일염으로 밑간을 해서 살짝 식초도 넣어준다.

현미밥으로 만들면 더 구수하고 맛이 있다는 걸 딸은 기억하고 있다.


김밥 재료에는 다진 쇠고기와 파프리카, 오이고추, 깻잎, 우엉, 단무지, 계란지단, 크래미 게맛살, 소금에 절인 오이가 들어간다.

특별히 생야채를 그대로 썰어 넣으면 씹히는 식감이 아삭아삭하다.

모든 재료 준비를 마치고 나서 약속대로 주인공 딸아이를 깨웠다.


위생장갑을 낀 엄마의 손을 대신해서 요리 보조를 자청한 딸은 연달아 김 한 장씩을 김발에 올려준다.

어느덧 10줄의 김밥이 완성되어 동그란 김밥 내용물이 보이도록 예쁘게 용기에 담겼다.




생일인데 자꾸 김밥 꽁지만 먼저 먹고 있는 딸아이에게 예쁜 모양을 먹으라고 잔소리를 한다.

“난 김밥 꽁지가 더 맛있어요”

“그래 MZ 취향대로 먹어




저녁 무렵엔 여름에 태어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며 수박케이크를 딸이 직접 만들었

언제 준비했는지 돌고래와 물고기 모양틀이 나왔고 알파벳 생일초도 꺼내왔다.

동그란 수박의 뚜껑처럼 자른 윗부분 장식모양틀로 쓰고 몸통은 원형대로 돌려 깎아 빨간 원기둥이 되도록 준비했다.

생일초를 꽂고 돌고래와 물고기 모양 수박을 이쑤시개로 장식을 하니 수박케이크는 작품처럼 완성되었다.

퇴근한 딸바보 아빠와 더불어 우리는 생일송을 부르며 박수를 쳤다.

건성건성 박수를 치던 딸아이도 촛불을 끄는 순간엔 눈을  감더니 두 손 모아 기도자세를 취했다.

순간 진지해진 반전모습에 귀여운 웃음이 났다.

     



딸의 특별한 생일케이크 촛불을 고 나니 문득 30년 전 나의 생일 한 장면이 기억속에 다시 켜졌다.

친한 입사동기들과 강원도 화천에 사신다는 동료 할머니댁으로 1박2일 가을여행을 갔었다.

영화 '집으로'의 감성과 닮은 시골집에 88세의 할머니는 손녀와 친구들의 방문을 너무나 반겨 주셨다.

작고 왜소한 체격으로 그을린 얼굴과 손등에는 깊고 푸른 세월의 주름이 가득하셨고 눈빛과 미소는 자연처럼 순수하셨다.


할머니의 선한 눈빛과 주름진 박수가 함께했던 여행지에서의 생일 축하는 지금 생각해도 위로와 힐링이었다.

시골의 고즈넉한 가을과 할머니의 온정이 어우러졌던 내 젊은 날의 특별했던 생일이 가슴 한켠에 행복으로 머문다.

w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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