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맘 Jul 22. 2024

딸의 생일사진에 담긴 이야기

7월 달력에 표시된 동그라미 하나와 메모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다음 주에는 대학생 딸의 스물두 번째 생일을 챙겨야 한다.

생일상에 빠질 수 없는 미역국과 특별히 딸이 좋아할 음식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며 소파에 앉았다.

문득 거실 서랍장에 비치된 가족앨범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중에서 딸아이의 시간이 담긴 묵직한 분홍사진첩에 자석처럼 손이 닿았다.




하얀 포대기에 싸여 얼굴만 빼꼼하던 신생아 시절부터 4살 위의 오빠품에 안겨 천사 같은 웃음을 한 모습까지 딸의 지난 시간들을 천천히 넘겨보았다.

생후 1년의 금빛치장을 한 돌잔치 사진이 나오시선이 오래 머물며 먹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첫돌기념사진 어디에도 보이지 않던 친정엄마가 내 먼 기억의 수첩에서 자동문을 열고 나오셨.




첫 아이 때에는 친정엄마가 산후조리를 해 주셨었다.

막달이 되었을 때 엄마는 이번엔 산후조리원엘 갔으면 좋겠다고 보태 쓰라며 작은 봉투까지 건네셨다.

왠지 피곤해 보이는 엄마의 안색을 살피주저 없이 동의했을 뿐이었다.

2주간 조리원 생활마치고 나온 후에도 엄마의 발걸음은 생각보다  뜸하셨다.

출산휴가를 마치면 엄마의 육아 도움을 받으려고 친정 가까운 거리로 이사까지 한 나였다.




그날은 거실에 앉아 딸아이를 안고 모유수유를 하던 중이었다.

바닥의 휴대폰 소리에 어렵게 한쪽 손으로 끌어당겨 받고 보니 막내올케의 전화였다.

지금도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확실치 않지만 “어머님이 말기암이래요”라는 마지막 말에 송곳처럼 찔려 시간이 멈춘 듯한 기억만 있다.

휴대폰을 털썩 내려놓고 소리 없이 굵은 눈물만 흘렸다.

맑은 눈으로 엄마젖을 빨고 있는 딸아이의 왼쪽뺨으로 내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해 12월 초, 엄마는 지도에도 없고 교통편도 없는 연락조차 안 되는 먼 하늘나라로 가셨다.

갓 태어난 외손녀의 첫 돌조차 눈에 담지 못할 정도로 친정엄마의 시간은 빠르게 멈춰 버리고 말았다.



힘든 마음을 돌볼 사이도 없이 일과 가정과 육아의 촘촘한 시곗바늘이 나를 움직였다.


사진첩을 넘기다 보니 딸아이의 성장 시계도 무럭무럭 움직여 초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이번엔 왁자지껄한 딸아이의 생일파티 사진을 흐뭇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맞벌이 엄마로서 이런저런 미안함을 대신하려고 꼭 실천한 것이 있다면 ‘생일파티’ 이벤트였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집으로 학급 친구들을 초대해서 직접 생일상을 마련해 주곤 했었다.




한 번은 생일을 며칠 앞두고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딸아이에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이 번 생일에는 친구들 몇 명 초대할 예정이니?”

“몇 명이요?”

엄마가 정한 기준을 의아해하는 딸의 답변이었다.

초등 저학년때와 달리 제법 덩치가 커진 고학년이라 인원수를 제한하는 건 당연하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딸아이는 왠지 말이 없었다.


며칠 후 답변을 듣지 못해 답답해서 다시 얘기를 꺼낸 순간 “아차” 싶었다.

“엄마, 누구는 초대장을 받고 누구는 초대장을 받지 못하면 나도 친구도 서운할 거 같아요 ”

“반친구 모두에게 초대장을 주고 싶어요”

상대방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딸의 답변을 듣자 이번에는 엄마인 내가 말을 할 수 없었다.




누구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초대장은 반친구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딸아이의 생일은 7월 하순이라 항상 여름방학 시점과 겹치기 일쑤였다.

가족여행 간다는 친구, 학원시간과 겹쳐서 못 온다는 친구, 교회캠프를 가서 미안하다는 답변이 돌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인원 정리가 되었다.

결국 초대의 최종선택은 딸이 아닌 친구들 몫이 되면서 뒤탈 없이 기분 좋게 딸의 생일파티가 마무리되었다.

하마터면 놓쳤을 배려심을 어린 딸 덕분에 깨우친 엄마가 되었다.


7월, 딸의 생일을 앞두고 우연히 사진첩을 읽었고 들킨 마음의 기억을 썼다.

     

     

     


이전 08화 엄마의 밥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