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맘 Jul 15. 2024

엄마의 밥상

엄마가 아침밥 차려줄까?”

으응

     

평소 같으면 딸아이가 일어나서 자기가 먹고 싶은 양배추 볶음밥이나 두부 넣은 다이어트 요리를 했을 거다.

짠한 마음에 딸아이 보다 먼저 주방에 도착해서 팔을 걷었다.

더위 탓인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딸을 위해 엄마의 손맛 치료제를 넣어볼까 한다.



     

어제 미리 차갑게 넣어둔 콩나물 냉국을 김치냉장고에서 꺼내왔다

냉동새우와 바지락을 다져 넣은 부추전은 창밖에 내리는 빗소리에 맞춰 합창을 하며 익고 있다.

단골 반찬가게에서 사 온 잡채를 식탁에 내려놓자 특별함까지 올라간다.

평범하고 익숙한 냉장고 속 밑반찬들도 식탁에 입장을 완료했다.

마지막으로 수저와 젓가락을 놓으며 딸아이를 부른다.

 


    

주방 창문을 힐끗 바라보며 식탁의자를 빼던 딸이 말한다.

“비가 오네?”

“와 부추전 맛있겠다”

일찍 출근을 하는 남편과 먼저 아침을 먹은 탓에 딸아이가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봐 준다.

해물 부추전을 맛있게 먹는 딸을 보며 친정엄마의 밥상이 떠올라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친정엄마의 식탁은 까다로운 식성의 경상도 남자와 4남매를 위한 집밥이 전부인 시간이었다.

요즘처럼 흔한 배달이나 외식은 낯설고 값비싼 사치였다.

바쁜 아침밥상에 매일 푸짐하게 ‘부침개’가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경상도 분들이라 배추전은 기본이었고 감자전, 호박전, 부추전, 가지전, 미나리전 등이 보였다.

워낙 부담 없이 빠르게 만드셨던 엄마를 보면서 나도 닮아 갔는지 모르겠다.

신혼 초, 출근밥상 호박전을 뚝딱 만드는 나를 “이 여자 뭐지?” 하는 눈빛으로 남편이 바라봤었다.

친정엄마의 속도까지 닮은 주방 손놀림 때문에 지각 걱정은 없었다.

 


    

밥상 위의 음식평론가인 친정아버지는 구운 고등어를 무척 좋아하셨다.

마당의 곤로(난로형 기름버너)에 석쇠를 올려서 노릇노릇 구워지는 고등어 냄새와 연기가 평범한 아침을 깨웠다.

아버지를 위해 엄마는 특별히 고등어 대가리까지 챙겨 와서 바삭하게 구우시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고추부각을 빼놓을 수 없다.

버스를 타고 경동시장까지 가셔서 풋고추를 한가득이고 지고 오시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난다.

찹쌀가루를 입힌 풋고추를 큰 솥에 쪄 말린 후에 커다란 양파망에 매달아 놓으셨다.

끓는 기름에 휘리릭 튀기듯 건져낸 고추부각이 설탕옷을 입으면 식탁의 인기메뉴가 되곤 했었다.



     

유치원생 시절 친정집에서 돌봄의 기억이 있던 아들은 과자처럼 바삭한 고추부각의 맛을 지금도 이야기한다.

운 나쁘게 매운 고추가 입안에 들어와 엉엉 울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남은 고추부각과 장아찌, 고추장, 된장이 줄어드는 게 사무치게 아리던 기억이 난다.



     

건강한 딸아이는 식성이 참 좋다.

군 입대 전까지 너무 말라서 걱정되던 아들과는 정반대다.

180센티 키에 53킬로그램의 아들을 항상 애틋하게 생각하며 모성애가 넘쳐났었나 보다.

팔이 짧거나 젓가락질이 서툰 것도 아닌데 맛난 반찬을 아들 앞으로 습관처럼 밀어주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딸아이의 눈에서 나오는 레이저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오늘은 레이저 발사 걱정이 없는 딸아이만을 위한 밥상을 차렸다.

아침 밥상을 준비하며 옛이야기도 나누고 딸에게 몰래 반성문도 써 본다.


엄마의 밥상이 그리움을 건드린 아침이다.


작가의 이전글 같이 가치 있는 시간을 그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