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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맘 Aug 26. 2024

우울증을 알아차린 후배에게

파이팅 깃발을 귀여운 이모티콘까지 등장시키며 휴대폰에서 덕담이 오갔다.

늘 나의 브런치글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아끼는 후배와 유쾌하게 카톡을 주고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후배가 대화 중에 슬그머니 이런 고백을 했다.

“언니.. 사실 제가 요즘 우울증세가 있어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

이모티콘의 밝은 모습 뒤에 가려진 후배의 그늘진 마음을 알게 되자 무심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다급히 카톡에서 빠져나와 곧장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동안 힘들었구나, 언니가 몰라서 미안해”

간단히 목소리로 안부를 확인하고 급하게 저녁 온라인 줌미팅 약속을 잡았다.



카톡과 전화통화만으로는 아쉬움이 아서 온라인 화상을 통해 얼굴이라 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 생각하는 ‘우울증’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기억이 있어서 거볍게 넘길 수가 없었다.

잠깐의 대화를 마치고 휴대폰에 보이빨간색 통화종료 버튼후배의 마음 신호등 같아서 힘을 주어 버렸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우울증은 갱년기 여성들뿐 아니라 앞만 보고 달려온 바쁜 현대인들에게 자주 노출되는 마음의 병이다.

어느덧 10년 전 일이 되었다.

초여름에 걸려온 큰오빠의 불안했던 전화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우울증을 앓던 올케언니가 연락 없이 집을 나간 지 이틀째라며 실종신고를 했다고 털어놨다.

자초지종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나는 어쩔 줄 몰랐었다.

     



인천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던 큰오빠 부부는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었다.

주방을 담당하는 올케언니는 항상 밝고 싹싹하게 손님을 맞이하던 성격 좋은 언니였다.

근처 상가를 오가야 하는 힘든 배달업무는 큰오빠가 거뜬히 담당했었다.

     


큰올케 언니를 볼 때면 음식장사가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손등과 걷어올린 팔에는 뜨거운 기름과 냄비에 덴 상처가 곳곳에 눈에 띄어 마음이 먹먹했었다.

그런데 겉으로 내색조차 않았던 마음의 병이 그토록 깊은 줄은 상상하지 못했었다.

언니의 갱년기와 함께 찾아온 심한 우울증은 결국 폐업신고로 이어져 식당을 접어야 했었다.

    


 

그동안 걱정할 까봐 뒤늦게 사실을 털어놓은 큰오빠의 목소리는 사뭇 떨리고 있었다.

항상 동생들을 위해 가진 것을 양보했던 큰오빠는 마음 따뜻하고 착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다.

누구보다 행복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 큰오빠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천만다행으로 다음날 새벽녘에 큰올케 언니는 아파트 초인종 소리와 함께 돌아왔다.

비록 손목과 머리에 스스로 낸 상처로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살아와 주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사치병이라고 치부하던 우울증은 죽고 싶도록 무서운 질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병원 침대에서 붕대로 칭칭 감긴 언니의 팔을 잡고 진심으로 말했었다.

     

“언니! 고마워요 살아줘서

울 오빠 홀아비 안되게 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몇 번의 피부이식 수술을 하고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마침내 언니는 길고 외로운 터널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올케언니는 종교생활로 우울증을 극복했고 모든 것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매일 새벽예배를 루틴으로 실천하고 아픈 환우들을 위한 기도로 최선을 다 하는 봉사의 아이콘이 되었다.

   


  

저녁 무렵 온라인 줌링크를 열고 모니터 화면으로 다시 만난 후배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가 우울증을 알아차린 건 아주 다행이야

그리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해줘서 고마웠어”   

전문의가 아니라서 우울증에 대한 원인과 처방을 나열할 수는 없었다.

검색창이나 방송매체를 통해 도움 되는 정보는 얼마든지 손쉽게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원하는 이야기에 기꺼이 내 마음과 귀를 열어주고 짜증의 빈도가 잦았던 나의 갱년기 경험담도 공유해 주었다.

무엇보다 서로 가까이에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우울증'은 스스로 알아차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오픈하는 마음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후배를 위해서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날씨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 주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겠다.


답답할 때 심호흡은 몇 번이 좋을지, 어떤 밥상메뉴가 당기는지, 어떤 시간대에 어떤 장소를 걷는 게 도움이 될지 생활 속 처방전을 쓰면서 마음을 읽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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