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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맘 Nov 18. 2024

나의 반려악기 '칼림바'

음악과 친하지 않던 내가 자발적으로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칼림바’가 유일했다.


퇴직 후, 수족관 같던 조직의 틀을 벗어나서 흔히 말하는 '인생 2막'이라는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디지털세상과 만나고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이 신선했지만 자기 계발 목록에 올라타기가 조금은 숨이 차던 때였다.

음악이 주는 치유의 힘을 알기에 때때로 나만의 연주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차오르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칼림바’라는 악기를 화상수업인 줌으로 배운다는 정보가 귀에 쏙 들어왔다.

생소한 이름의 악기였지만 화상수업을 할 정도면 생각보다 섬세하거나 큰 재능이 필요한 건 아니겠다는 기대감이 검색을 부추겼다.


먼저, 생소한 악기의 정체를 쳇 GPT에게 물었다.

칼림바아프리카 전통악기이며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작은 타악기에 속한다.

나무몸체금속판이 장착된 형태로 리드의 길이에 따라 각기 다른 음이 난다.




간단한 사전적 지식을 읽은 후에 쇼핑 플랫폼을 열었다.

애당초 음악 동아리나 커뮤니티에 섞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가격도 착하고 휴대하기 적당한 사이즈가 혼자 연주도 가능해 보였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끌림이 있었다.

파격 할인이 적용된 반가운 악기모델을 검색하고 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집으로 배송된 ‘칼림바’는 나의 작은 반려악기가 되어 주었다.




유튜브에서 숫자악보를 캡처해 가면서 ‘학교종’, ‘비행기’등을 시작으로 더듬거렸다.

‘옹달샘’, ‘에델바이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의 긴 멜로디가 익숙해질수록 나의 힐링그래프도 올라갔다.


책을 읽다가 혼자 있는 거실이 적적할 때면 칼림바를 손에 쥐었다

내 귀에 들리는 맑고 청아한 멜로디는 어린 시절 내면의 아이를 위로하는 것도 같았다.




초등학교 방과 후, 또래 친구들이 음악학원 가방을 들고 학원에 가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부러워했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지만 4남매를 키우시며 먹고살기에도 빠듯했던 집안 살림이었다.


오빠들 얘기를 빌리자면, 밀린 육성회비(당시 학교운영비)때문에 선생에게 손찌검당했던 장면이 지금까지도 너무 선명해서 화가 난다고 했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된 믿기 힘든 영화 같은 이야기에 차마 웃을 수 없었다.

그나마 막내였던 나는 공교육비에서는 자유로웠지만 사교육비는 그렇지 못했었다.


넌 손가락이 참 길구나

피아노 치면 잘 치겠는걸?


어쩌다 길쭉한 나의 손가락을 칭찬하며 비유당하는 피아노는 나와는 먼 친구라고 생각했었다.

학창 시절 음악시간은 음정과 박자, 낯선 음표들 때문에 쉽게 친해질 수도 없었다.




그렇게 사치라고 생각했던 피아노를 닮은 악기가 운명처럼 내 손안에 들어왔다.

멜로디와 친해졌지만 멋 부림 효과인 화음코드를 혼자서는 이해할 수 없어서 한계를 느끼고 있을 때였다.

친구의 집 근처 평생학습관에 칼림바연주 프로그램이 개설되었다고 전해 들었다.

둘이 함께 신청은 했지만 타 구민인 나에게 기회가 주어질지 확신은 없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기로 했다.

대기자 명단에 있던 나에게 개강 전에 중도포기자가 생겼다며 담당직원이 연락을 한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친구도 만나고 기초 음악이론연주기법도 제대로 배워볼 수 있는 행운의 기회가 찾아왔다.

낯선 악보연주에 손가락이 ‘얼음’이 되기도 했지만 마음으로 ‘땡’을 외쳐주는 친구가 옆에 있으니 편안한 배움의 연속이었다.




벌써 칼림바와 함께하는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있다.

이제는 ‘잘하자’는 욕심보다 ‘즐기자’는 의미가 더 소중한 걸 친구와 나는 알아차렸다.


우연과 행운이 섞인 ‘칼림바’와의 인연은 나에게 음악적 스위치를 켜준 고마운 일이었다.

평생학습관으로 가는 길목마다 떨어진 은행알을 피해 걷던 발걸음조차 그리울 것만 같다.


어느새 나뭇가지엔 빨간 단풍잎들이 띄엄띄엄 음표가 되어 걸려 있었다.

바람의 연주에 맞춰 빨간 춤을 추는 계절이 나처럼 바쁘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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