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in나 essay 28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상담원에게 폭언을 하지 말아 주세요" 고객 센터 전화 연결 멘트다. 일처리를 어려워하는 친구를 돕기 위해 상담원과 통화를 시도했다. 한참을 대기해도 연결이 쉽지 않았다. 간신히 연결되었지만 결국 자동으로 뚝 끊겨 버리는 통에 친구가 뿔이 잔뜩 났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상담원과 연결됐다.
문의 사항이 복잡하거나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잘 안된다며 상담을 요청한 우리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상담원은 말끝에 한숨을 이었다. 통화하며 상담원과 함께 진행하고 싶다고 청하자 상담원의 깊고 짧은 한숨이 느껴졌다. 고객 센터 상담원의 업무 능력을 평가하는 요소에 통화 시간, 신속 정확한 처리, 상담 건수가 포함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절차에 따라 진행해도 반복되는 오류에 지칠 대로 지친 우리에게는 상담원의 도움이 절실했다.
전화 상담 시간을 지연시키면서까지 상담원과 함께 진행해도 자꾸 오류가 나자, 상담원도 짜증이 난 눈치다. 음소거도 하지 않은 채 한숨을 푹푹 쉰다. 마치 바로 면전에서 표정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상담원도 사람인 걸, 짜증 나겠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상담원의 불량한 상담 태도에 내 기분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다독였다. 다행히 다음 단계로 넘어갔고, 진행 과정 중반부쯤에서 상담원이 말했다. "이제 오류 있던 단계는 넘겼으니, 나머지 절차는 문자로 받아서 따라서 해보는 건 어떠세요." 상담 시간이 길어진 것에 미안했다. "네, 해볼게요.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치고 안내된 문자대로 몇 번이고 해 보았지만 또 오류가 났다.
재차 오랜 시간 대기하며 상담원 연결을 시도했다. 간신히 마지막 단계를 앞두고, 상담원과 연결됐다. 진행 상황을 설명하자 상담원이 말했다. "저와 통화 중에 모든 절차가 종료된다면 다행이지만, 접속 오류로 많은 고객님들이 동일한 단계에서 멈추고 있으니, 다시 오류가 발생한다면 1시간 후에 다시 진행해 주세요." 역시나 마지막 단계에서 오류가 났다. 오류가 났음을 상담원에게 알렸고, 1시간 후에 다시 해보겠다며 "고생하셨어요" 하고 고마움을 전한 후, 상담을 종료했다.
상담원에게 고생했다고 한 말이 불편했는지 옆에 있던 친구는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고생은 무슨! 고생은 우리가 했지!"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미소 지었다. 길다면 긴 1시간을 앞으로 내리 기다리기에는 허기가 심해서 점심 식사를 위해 장소를 옮겼다.
가만 생각하니 상담원의 짜증은 통화하는 내가 다 받았는데 짜증이란 짜증은 친구가 다 내고 있었다. 나의 문제가 아니라서 괜찮았던 걸까? 물론 어느 정도는 그랬을 수도 있다. 당사자가 아니니까 긴급함이 덜해서 상담원의 태도에 울그락불그락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 마음이 '해결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은 아니었다. 긴 시간 동안 적극적으로 도운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친구가 짜증 내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한데 돌이켜 생각하니 상담원의 태도가 아쉬웠다.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니 상담원에게는 예의를 지켜달라고 강조하면서 정작 상담원은 한숨과 짜증 섞인 말투로 상담을 진행한다니...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상담 고객에게 짜증과 한숨은 자제해 주세요" 상담원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제와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상담원의 한숨과 짜증에 영향받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다독였던 것은 효과가 없었던 모양이다. 상대방의 감정 표현이 우리 기분에 영향을 줄 때가 있다. 상대방의 한숨과 짜증 섞인 말투는 평온한 마음을 뒤흔들어 버린다. 말 한마디, 숨소리 하나에도 감정은 전달된다.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잊고 산다. 짜증이 올라오고 한숨이 쉬어지는 상황일수록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말이다.
전화 상담 중, 상담원의 한숨과 짜증에 상담원 입장을 이해해 보겠다며 내 감정을 누르며 토닥일 것이 아니었다. '괜찮아, 괜찮아' 하며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고 넘기려다 감정이 쌓이고 쌓이기 전에 괜찮지 않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에게 불쾌한 감정이 커지고 있음을 인정했다면 어땠을까. 내 감정도 존중했다면 말이다. "혹시 제가 뭔가 불편하게 해 드렸나요?" 하고 질문했어도 괜찮았겠다. 이 질문에 상담원은 뜨끔해하며 태도를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감정 표현은 자유지만, 그걸 계속 드러내는 건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는 행동 아닌가요?" 하고 직설적으로 말했을 수도 있겠다. 나는 내 감정을 무시한 채 상대방의 감정만 배려하여 나의 평온함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나의 감정을 인정하고 전달하는 말은 스스로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어 준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다만, 서로의 마음에 상처 나지 않게 조금씩 배려하여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한다면, 우리는 모두 아프지 않은 하루를 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