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in나 essay 27
가끔 누군가의 눈빛 하나, 말투 하나에도 마음이 움츠러들 때가 있다. 나보다 더 나아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늘 제자리인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열등감은 속삭였다. "못해, 부족해, 할 수 없어, 재능이 없나 봐."
둘째라서였을까? 어릴 적부터 비교당하고 양보해야 했다. "언니니까, 동생이니까" 늘 엄마에게 붙어 다녔던 그 말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나는 무엇을 해도 당연한 것이거나 잘못한 것이 되었다. 엄마는 언니와 동생 편이었다. 나는 겉으로는 굉장히 밝아 보였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움츠러들어 있었다. 그 마음이 견디기 힘들어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집에 있는 시간을 최소화했다. 산으로 들로 다니며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갔다. 말하지 않았으니 엄마가 내 속을 알리는 없었다. 어두운 저녁에 귀가한다고 혼나기 일쑤였다.
그 심리는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의 말 한마디에 괜히 작아지고, 타인의 표정을 살피는 나를 보며 마음속 어딘가가 저릿했다. 내 감정이 티 나지 않길 바랐다. 오랫동안 숨기려고 애썼다. 감정을 숨기는 것은 어렵다는 걸 느끼면서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존재로 살기로 했다. 그러면서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정작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열등감을 느끼는 이유는 다양하다. 비교, 기대에 대한 부담, 부정적인 자아상,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회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 등이다. 열등감은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마음에 스며든다. 열등감에 힘든 사람은 자주 비교한다. 칭찬보다 비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신경 쓴다. 부족한 점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자꾸만 스스로를 깎아내리다 보니 진짜 자신을 볼 수 없게 된다.
어느 날, 나를 점점 작아지게 하는 것은 타인이 아닌 나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이 아닌 것에 비교당하고, 잘한 것을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에 '비교하지 말라고, 잘했다고 인정해 주고 칭찬해 달라'고 한 마디 할 줄 몰랐다. 그 순간들에 작아지기 바빴지, 단 한 번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지 못했다. 누군가가 인정해 주고 안 해주고를 떠나서 떳떳하다면 내가 나를 인정해도 된다는 것을 그날에야 알았다. 내가 나를 토닥이고 품어 안기 시작했다. 참 오래도 걸렸다. 하지만 이제 안다. 열등감은 내가 나를 몰라서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를 바로 볼 수 없어서 타인의 평가에 작아지고 열등감이 밀려드는 것이라고.
그럴 때는 열등감을 의식적으로라도 잠시 밀어내려고 한다. 무엇이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지, 무엇의 어떤 점이 나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것인지, 나의 어떤 면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지 생각한다. 나를 바로 알기 위해서다. 그 후에 그 부분을 채우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만 하는지 고민한다. 열등감을 느끼고 있고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해도 상황을 극복하게 할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열등감은 떨쳐낼 수 없다. "독은 독으로 다스리고(이독제독), 열은 열로써 잡는다(이열치열)"고 했다. 공부로 인한 성적 스트레스는 공부를 하고 목표한 성적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해야만 해소된다. 일로 생긴 스트레스는 그 일이 올바로 처리되어야만 사라진다.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의 스트레스는 무엇에서 오는 것인지 무엇을 해야 떨쳐낼 수 있는 것인지 바로 알고 행해야만 한다.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노력과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은 대개 통제력이 우수하다. 통제력이 좋은 사람은 그 무엇도 쉽게 낭비하지 않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좋은지 나쁜지 등등을 따지며 시간을 낭비하거나 감정을 소비하기보다 지금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지금을 충실히 살다 보니 열등감, 불평, 불만에게 내어줄 시간이 없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현실로 이뤄낼 수 있는 방법을 실천하며 산다. 그러니 열등감에 둘러쌓인 사람과 열등감을 떨쳐낸 사람 중, 누가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것인지 두말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믿는 마음이 생기고, 자존감도 생긴다. 지금은 이런 면이 부족하지만 이렇게 한다면 분명 내가 바라는 내가 될 것이라는 확신도 갖게 된다. 더 이상 남과 비교하지 않고 어제의 나와 경쟁하기 시작한다.
열등감은 아직도 가끔 얼굴을 내민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건, 그 감정에 끌려가지 않는다는 거다. 나는 이제 내가 잘하는 걸 알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열등감은 ‘네가 부족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더 잘하고 싶고,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거라는 걸 기억하고 있다. 열등감을 미워하지 않고, 다그치지 말고, 그냥 한번 다정하게 안아주고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을 갖는다.
누군가에게 스스로 느끼는 열등감은 한없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자극이 되기도 한다. 열등감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무엇보다 열등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느냐, 어떤 태도로 처리하느냐가 중요하다.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충분히 긍정적 자극으로써의 심리적 반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니 열등감이 자극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마음에 품지 말고 이제는 떨쳐낼 수 있길 바란다. 열등감이 속삭이는 진짜 마음이 원하는 말을 들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