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타고 회사 가는데요
우리 회사에서는 shuttle 셔틀 한다 하고 미국항공사들은 commute 커뮤트 한다 하는.. 셔틀!
베이스 공항 있는 동네에 사는 게 아니라 다른 도시에 살면서, 비행 때마다 비행기 타고 베이스로 오는 걸 말한다. 그니까 대한항공 인천/김포로 출퇴근하는 승무원인데 집은 부산,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이 베이스인 에어 프랑스 다니지만 집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다, 이런 것.
한국에선 흔하지 않은 개념인 것 같은데 유럽항공사, 미국 항공사에선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워낙 땅 덩어리가 크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어떤 비행에서는 기장 포함 크루의 절반이 다 다른 도시/나라 사는 사람이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사는 곳도 상상 초월 다양하다.
우리 회사는 나처럼 독일 내 다른 도시(베를린,함부르크,브레멘 등)에 살면서 프랑크푸르트, 뮌헨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정말 흔하고 이 외에도 이탈리아,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독일 근교 국가 사는 사람들, 이스라엘 사는 사람, 중동이랑 미국 사는 사람들까지도 봤네요.
이유 역시 각양각색!
길고 추운 독일 겨울이 너무 싫어서 1년 내내 해가 잘 드는 스페인/이탈리아/그리스 등에 산다는 사람, 자기네 나라 항공사는 취항 노선이 다양하지 않아 우리 회사에 들어왔지만 독일에 살고 싶지는 않아 셔틀 한다는 사람, 베이스 도시의 집값이며 생활비가 너무 비싸 이사 오는 것보다 자기네 동네에서 비행기 타고 출퇴근하는 게 더 저렴하다는 사람. 남친/여친이 다른 나라 살아서 사랑을 쫓아 본인도 이사 갔지만 회사는 계속 다니고 싶어 셔틀한다는 사람. 전에 비행 한번 같이 한 독일인 기장은 독일에서 자식 키우기 싫어서 미국으로 이사 갔다고 했다. 비행 전날 미국에서 독일로 날아와서 하루 자고, 다음 날 나랑 서울 비행 가서 레이오버 보내고, 다시 독일 돌아와서 하루 자고 미국으로 돌아가던 체력 대단하신 분.
나 같은 경우는 원래 살던 베이스 도시랑 너무 안 맞았고 베를린에 꼭 한번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에 이사 간 후 셔틀을 하고 있다.
매일 출근 안 해도 되고, 저번에 언급한 우리 회사 장점 중 하나 유연한 파트타임 제도 그리고 비행기 티켓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특징이 합쳐져서 가능한 셔틀.
회사의 물리적 위치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살고 싶은 곳에 살 수 있다는 게 참 매력적이다. 디지털 노매드랑 살짝 비슷한 것 같기도? 그들은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 할 수 있듯 우리는 공항만 있다면 어디서든 살 수 있다!
단점은 출퇴근길이 정말로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나의 듀티 비행이 아침 여섯 시 첫 비행기라면 그 전날 미리 베이스 도시에 와서 친구집이든 호텔이든 하루 묵어야 한다. 출근 비행기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무슨 문제가 생겨 딜레이 된다면..? 브리핑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으려나 옷 다 챙겨 입고 왔는데 흑흑 상상하기도 싫다. 퇴근길엔 또 어쩜 온갖 일들이 다 생기는지. 13시간 장거리 비행 마쳤는데 집 가는 비행기 딜레이 돼서 쩔은 유니폼 입고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하고.. 오버부킹 돼서 다음 편 비행기 타라고 승객 리스트에서 밀리질 않나, 갑자기 비행기 취소돼서 집 갈 방법이 없어 호텔 하루 급하게 묵을 때도 있고.. 또 이동 및 숙박에 드는 비용은 본인 부담이다. 내 의지로 내가 정한 곳에 사는 거니까요!
듀티 비행 끝나고 지하철 타고 집으로 휘리릭 가는 동료들을 보면 가끔씩 부럽긴 하다. 그들이 집 도착해서 개운하게 씻고 나와 누워서 넷플릭스 볼 때 나는 아직도 공항에 있는데..! 하지만 내가 선택한, 나한테 잘 맞는 내가 사랑하는 도시에 산다는 게 그 몇일의 힘듦을 잊게 해 준다. 체력 유지를 위해 운동을 더 열심히 하게 됐다는 또 다른 장점도 덧붙여 본다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