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IT기업, 정확하게는 디지털 광고 업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내 첫 직장은 전혀 다르다 못해 연관관계가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비영리기구(NGO)였다. 대학에서 국제학, 국제관계학을 전공했고 성향상 인류애가 조금은 넘쳤던(?) 나는 졸업 후에는 국제기구, 국제원조 분야의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다. 4학년 1학기로 모든 학점을 다 이수하고 졸업식 날만 남겨놓은 상태로 한국에 들어와 취업활동을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한국대학을 다니지 않은 나는 취업활동의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가입하는 네이버 카페가입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일단 한국의 취업활동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직접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첫 발을 내디뎠고, 사실 그 순간부터 나는 남들과 다른 방식의 취업의 길을 갈 것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잠깐 한국사회에서 멀어져 있던 내 눈에, 암묵적 그리고 사회적 순리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한국에서의 '취업활동'이란 '일단 모든 공채에 지원해 언젠가는 좋은 대기업에 들어간다'가 최종 목표인 마라톤이었다. 즉, 각각의 강점 혹은 하고 싶은 것이 다른 전국의 모든 대학생들의 꿈은 결국 '대기업 사원'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대기업 사원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서류 100+개를 쓰고, 그 100+개 안에서 감사히 서류통과가 된 회사들의 필기시험 및 면접을 보고 겨우겨우 바늘구멍 통과하듯 뽑힌 회사에 들어가는 패턴이 정석이며 그 흐름이 사회적으로 정의된 취업활동이었다. 100개 이상의 서류를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각 회사와 전공을 살린 지원 포지션에 맞추어 자기소개서를 소설처럼 쓰는 것이 당연했다. 이는 일본의 취업활동과는 많이 달랐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만 일본은 전공을 살려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고른 회사에 지원하여 몇 개월의 교육 후 내 소속 부서가 정해지는 형식이었고, 이런 일본 취업활동의 기본은 '자기 분석'이었다. 보통 대학생활에서의 전공보다는 대외활동 및 동아리 활동을 통해 공부 외의 경험을 많이 쌓고, 이것을 토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잘하는 것을 생각해 내가 가고 싶은 회사들의 방향을 먼저 결정한다. (물론 이것을 100% 알고 한방에 최적의 회사에 들어가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해당 회사 설명회에 참석하여 회사에 관해 듣고 이해한 후에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채용하는 측인 회사 또한 '해당 포지션의 전공지식이 있는가', '학점이 높은가' 보다는 '우리 회사와 성향이 맞으며, 회사에서 잘 키워나갈 수 있는 도화지 같은 사람인가'를 중점으로 본다. (상식적인 느낌이지만) 이제 막 졸업한 신입사원에게 업무적 경험이나 성과를 기대하지 않고 '서로 길게 갈, 잘 적응해서 서로 시너지를 얻을 친구를 채용한다'가 가장 채용에서 중점적으로 보는 포인트다.
이런 일본식 취업활동의 방향이 당연했던 나에게 '일단 모든 공채에 지원해서 어떻게든 서류를 통과시킨다'는 이해할 수 없는 전략이었다. 전혀 관심도 없는 업계에 그것도 전공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끼워 맞춰 지원을 해봤자 뽑히지도 않을 것이며, 어찌어찌 입사를 하게 된다 해도 절대 즐겁게 일하지 못할게 분명했다. 하지만, 한국식 취업활동이 당연했던 부모님에게 회사를 골라 지원하는 나는 '현실을 모르는 답답한 아이'일 뿐이었다. '100개를 써도 한 개가 될까 말까인데 너 같이 지원하면 절대 취업할 수 없다'며 자기소개서도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보자고 까지 이야기가 나왔다. 이런 부모님과의 대화와 대기업 사원이 되기 위해서 꾸역꾸역 그 틀에 나 자신을 맞춰 넣는 것이 회사 지원서/자기소개서를 쓰는 것 보다도 더 스트레스였던 나는 아예 대기업 공채보다는 일단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하며 차근차근 올라가자라는 전략을 세웠다. 당연히 대기업 사원이 된다면 몇백만 원의 월급을 받으며 그동안 참았던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는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있겠지만, 나는 '자랑스러운 돈 많이 버는 대기업사원' 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적당한 월급의 사람'이 내 하루하루의 삶의 질이 높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대기업 공채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오히려 마이너 한 국제사업/국제원조 등의 일을 해 볼 수 있는 포지션 중심으로 리서치를 했고, 운 좋게 어떤 한 작은 NGO의 인턴으로 120만 원의 월급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첫 월급 120만 원을 받았던 그때, 어느 누구보다도 나는 행복했고 뿌듯했고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