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 최고의 워라벨회사에서 연봉 1억을 내려놓고 무직자로..
(또다시) 끈기 없이 글쓰기를 내려놨다가 그 사이에 갑작스러운 큰 변화가 있어 일단 시간순이 아닌 이 순간의 기억과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다.
제목 그대로 누가 봐도 안정적인, 심지어 이런 회사가 다 있나? 싶은 최고의 워라밸 IT회사에서 높은 연봉을 포기하고 이번달부터 무직이 되었다. 최근 일이 너무 힘들다, 일이 맞지 않다, 사람들이랑 맞지 않다 의 일반적 이유가 아닌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전으로 나에게 맞는 길을 찾기 위해 세계여행을 가고 싶다'라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뒀다. 보수적 사회인 일본에서 외국인이지만 능력을 인정받고, 운 좋게도 나를 잘 알아주는 팀리더와 매니저들을 만나 약 5년간의 회사생활에서 무려 승진 및 포지션 이동을 3번이나 한 회사였지만, 지금 이 타이밍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아 퇴사 노티스를 냈다. 그리고 나는 세계여행을 위해 퇴사하는 유명인사가 되어있는 상황이다....
사실 이 결정은 갑작스럽게 저지른 것이 아니다. 남편과 결혼 전부터 '어느 나라에서 우리가 평생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고, 둘 다 일본에서 평생 살 이유도 한국으로 돌아갈 이유도 없다는 생각으로 '일단 안정적으로 편한(?) 일본에서 살고 있는 중'인 상태였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젊고 건강할 때 일본에서 나가 새로운 환경에 도전해 보자 라는 아주 두리뭉실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현실적인 이유로 일본 연금가입 10년이 차기 전에 한 번 연금의 일부를 돌려받아 나가자고 암묵적 합의를 한 상황이었다. 시간은 항상 그렇듯 아주 날아가듯 지나갔고 2024년으로 둘 다 약 8-9년 차가 되었기 때문에 그래! 올해 중에 떠나자!라는 계획을 세워 본격 2024년 1월부터 바쁘게 월별 계획을 세웠었다. 부부 둘 다 함께 일을 쉬는 기간은 현실적으로 잘 없고, 먼 미래에 우리 인생을 돌아봤을 때 '40년 직장생활을 했습니다'와 '39년 직장생활을 했습니다'에 사실 차이가 없지 않은가 라는 마음으로 이 기회에 1년간 같이 일을 쉬며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30대 부부가 둘 다 수입 없이 1년을 살아야 하는 아주 무모한 철없는 계획이지만 우리 둘 다 어떻게든 잘 될 것이다 하는 막연한 믿음이 서로에게 있기 때문에 그 결정과 플래닝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큰돈은 아니지만 무직 2인이 생활할 수 있을 적당한 자금은 저축해 있는 상황이고 일부 돌려받는 연금 금액으로 1년간 생활하자 라는 맥시멈 금액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사실 걱정은 없다. 평생을 모범생으로 착실하게 살아왔고, 누구보다 항상 계획하며 열심히 살아온 슈퍼 J 성향인 '나', 그리고 이런 나보다도 더 슈슈슈퍼 J성향의 가족들이기 때문에 '수입이 없어지는 것이 걱정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지만 왜 걱정이 없었겠는가. 사실 회사에 퇴사 노티스를 내기 직전까지도 이게 맞는 결정인가, 내 인생 최고로 후회할 결정이 아닐까?라는 걱정을 매일 엄청 했었다. 그럴 때마다 혼자 끙끙대지 않고 나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남편과 솔직하게 나 걱정되는 것 같아 라는 이야기를 종종 했고, 사실 여행을 하다가 만약 '일본에서 회사원으로 사는 것'이 우리에게 제일 맞는 환경이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그거 또한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었다는 대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퇴사 노티스를 내고 난 이후부터는 걱정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이제부터 남에게 혹은 회사의 계획에 맞추는 것이 아닌, 내가 세운 계획대로만 하고 그때 그때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 되는 온전히 '나'를 위한 인생이 시작된 것이었다.
사실 회사원으로서도, 다른 어느 회사 어느 포지션들보다 아주 자유롭고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런 자유로운 회사원생활까지 내려놓으니 더더욱 내 시간과 내 체력을 내가 조절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에 더 에너지가 넘치고 생기가 생겼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는 사실 쌓인 연차소진을 하며 공식적으로는 '휴가 중'인 상태라 막상 찐 무직이 되는 9월이 되면 마음이 달라질 순 있지만, 이미 백수생활 3주 차가 된 지금 현재로서는 본격 무직자가 되는 9월부터도 남편과 같이 함께 착착해나갈 단단한 마음가짐의 준비가 되어있는 느낌이다.
인정받고 잘 나가던 회사에 갑자기 퇴사 노티스를 냈을 때, 그만두는 주제에(?) 살짝 매니저가 너무 쿨하게 놔주면 살짝 슬프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상상과 다르게, 너무너무 감사하게도 매니저가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붙잡아두고 싶어 했다. 잘 제안해주지 않는 무급휴가제도를 인사부와 확인하여 '최대 6개월까지도 솔직히 기다려줄 수 있어. 네가 OK만 하면 내가 인사부 쪽이랑 이야기해 볼게'라고 해줬고, 최근 1년간 서포트정도로 일을 같이 했던 한국오피스 쪽에서는 곧 포지션이 하나 열리니 한국에 일단 돌아와서 마음이 바뀐다면 1순위로 바로 같이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계약직으로라도 같이 할 수 있게 한국 일본 둘 다 알아봐 주겠다는 제안까지 정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내가 원하는 여행도 하며 같이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알아봐 주었다. (물론 이 많은 제안들을 다 거절했다.) 지난 5년간 귀찮은 프로젝트라도 맡아하고, 한국/일본/본사 혹은 싱가포르/인도 까지도 커뮤니케이션하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를 다 쓰는 일을 최근까지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과 같이 일할 기회가 많았고 그만큼 퇴사소식에 많은 연락을 받았다. 공식 퇴사일을 약 1달 넘게 남기고 있는 지금도 사실 N번째 송별회를 하고 있고, 일본을 떠나기 전에 틈틈이 점심/저녁약속들을 잡고 있다. 지난주의 서프라이즈 송별회에서도 같이 오래 일했던 친구가 눈에 휴지를 붙여 우는 정도로 오열해 나도 모르게 눈이 촉촉해졌다. 나는 그냥 받는 만큼 최선을 다해 일을 했고 회사원 1로서 내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단순하지만 순수한 마음을 알아주었는지 많은 인정을 받아 계속 좋은 평판을 유지했고, 퇴사소식에 눈물도 흘려주고 '우린 언제든지 열려있어. 언제든지 연락만 해' '여행 끝나면 바로 돌아오는 거지? 준비해놓고 있음 되지?' 하는 이야기를 수없이 해주며 마지막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입사 시에 역대급 연봉을 받고, 2년 연속 승진도 하며 중간에 같은 연봉에 맞추어 포지션도 변경할 수 있었던 나의 가치를 알아준 고마운 회사. 잠깐 이별할 예정이지만 진심으로 다시 일을 시작한다면 1순위로 고려할 최고의 회사이고 퇴사 후에도 모두와 친구로서 계속 인연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약 1달 남은 내 마지막 일본생활. 할 일이 많이 남았지만 남은 시간 동안 잘 마무리해서 새로운 도전을 지금처럼만 착착 시작하고 싶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록과 함께, 어떻게 내가 일본에서 한 단계 한 단계 올라 외국계 IT기업에 입사해 30살 되던 해에 연봉 1억을 찍게 되었는지도 앞으로 포스팅할 예정이다!
(이제는 백수라 시간이 없어 글을 쓰지 못했다는 핑계가 안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