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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Sep 25. 2023

허주희의 人 인터뷰 15.강남 북쌔즈 이승한 회장

누구나 꿈꾸고 영감을 주는 공간 '북쌔즈'

영어 ‘Chaiman(체어맨)’은 큰 기업의 ‘회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의자에 앉아 지시하고 기획하는 체어맨’에서 지금은 ‘의자를 나르는 사람(체어맨)’이 됐다는 이가 있다. 대형 유통업체 홈플러스의 최장수 CEO 이자, 회장을 지낸 이승한 회장이 주인공이다. 거대 유통회사 회장에서 복합문화공간 ‘북쌔즈(Book Says)’의 주인장으로 변신한 이승한 회장을 만났다.



서울 강남 선릉역 부근, 빌딩 숲에 자리한 ‘북쌔즈(Book Says)’를 찾았다. 

이름에서부터 호기심이 인다. ‘책이 말을 하는 공간?’ 궁금한 마음을 안고 커다란 청록색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곳이 뭐하는 곳인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이곳의 설계자가 이승한 회장이다. 봄 햇살처럼 따스하게 맞아준 이승한 회장은 “이곳은 갸우뚱 공간”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체어맨(회장)이 대기업에서는 의자에 앉아 지시하는 사람이라면, 작은 기업의 체어맨은 ‘의자를 들어 나르는 사람’이에요. 북쌔즈에서 공연이나 강연을 할 때 일손이 부족하면 저도 열심히 의자를 옮기지요.”



골목 상권에 문화의 향기를 불어넣은 ‘북쌔즈(Book Says)’


북쌔즈 실내에 들어서면 거대한 규모에 먼저 압도된다. 

2층까지 이어진 높은 천장 아래, 왼쪽 벽에는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있고 오른쪽 벽에는 거대한 서재 같은 서점이 있다. 가운데에 테이블과 의자가 정렬돼 있고 공간 정면 안쪽에는 베이커리와 브런치, 커피가 만들어지는 주방과 카운터가 자리하고 있다. 반 층을 올라가는 2층에는 책으로 둘러싸인 서가가 있다. 마치 유럽의 도서관에 온 듯 중후하고도 세련된 느낌이다. 햇살이 은근히 비추는 창가, 아늑한 공간에 있으니 마음이 더없이 포근하다. 여기에 향긋한 커피 향과 갓 구운 빵 냄새가 퍼지며 행복한 엔돌핀이 돈다.


2018년에 문을 연 ‘북쌔즈(Book Says)’는 이름처럼 ‘책’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학술 세미나, 인문 경영, 비즈니스 강좌, 교육, 워크샵, 출판기념 저자강연회 등이 열리며 연주회, 실내악 공연 등 각종 문화 행사가 열린다. 강남은 물론, 서울 어디서도 보기 드믄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북쌔즈가 개관한 지 1년 반 만에 터진 코로나19로 그동안 이곳도 강연, 문화 행사 등이 정지되었다. 행사는 열지 못 했지만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공간”이라는 소문이 나며 북쌔즈에는 강남의 직장인을 중심으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북쌔즈는 2년 여의 겨울잠 끝에 본격적으로 강연 및 문화 행사를 펼쳐나가고 있다.



꿈꾸고 도전하면, 늙지 않고 성장하는 사람


‘북쌔즈(Book Says)’의 공간을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 듯, 이승한 회장의 나이 역시 짐작이 안 된다. 


이승한 회장은 1970년 삼성그룹에 입사한 뒤 삼성물산을 거쳐 홈플러스의 대표이사를 지냈다. 1999년 삼성 데스코 홈플러스의 창립자 겸 대표이사로 무려 16년을 역임한 이승한 회장은 치열하게 살아왔던 과거를 뒤로 하고 일흔 두 살에 복합문화공간 ‘북쌔즈’를 열었다. 골목 상권에 문화의 숨결을 불어 넣는 일이 그의 마지막 꿈으로 남은 것이다.


“단순히 늙기(Getting Old)보다는 성장(Growing Old)하고 싶어서 도전했습니다. 늘 꿈을 꾸고 도전한다면 늙지 않고 성장한 것이죠. 제가 퇴직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근무했던 곳이 선릉역이에요. 직장인이 많은 선릉역 주변 골목에 주로 식당과 술집들만 있는 것이 아쉽더라고요. 골목 상권에 문화를 불어넣으며 아름다운 도시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서점, 카페, 베이커리, 공연장, 강연장을 합쳐놓은 공간을 열었습니다.”


이승한 회장은 홈플러스를 운영하던 수많은 경험과 창조 바이러스를 다음 세대에 어떻게 알려줄지, 또 후대에 어떤 사회적 유산을 남길까 고민하다가 복합문화공간을 착안하였다. 70대라는 나이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이승한 회장은 오히려 더 늦기 전에 이루고 싶은 꿈을 실현해야겠다는 마음이 컸고 곧 실천으로 옮겼다.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삶이 달려간다


대기업 회장직에서 퇴사한 다음 해 이승한 회장은 넥스트앤파트너스(N&P) 그룹을 설립해 후배 기업가들을 위한 경영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50여 년의 사회 경험과 경영 철학을 담은 에세이집 ‘시선’(북쌔즈)를 펴냈다. 저서 ‘시선’에는 그가 경영인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여섯 가지 방법이 담겼다. 

그는 “사람이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삶이 많이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즉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삶이 달려간다”는 것이다.


“내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게 아니라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뱀을 그린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보아뱀의 속을 그렸다. 어른들에겐 항상 설명을 해줘야만 한다.”


이승한 회장의 시선을 바꾸게 해준 첫 번째 책, ‘어린왕자’(생텍쥐페리 저)에 나오는 글이다.


“북쌔즈라는 복합문화공간을 시작으로 사람들의 생각의 방향과 관점, 시선을 바꾸는 데 일조하고자 합니다. 관점을 넓히고 시선을 달리하는 방법 중 하나가, 독서나 문화 활동을 통해 많이 경험하면서 터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동네마다 골목마다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이 많아져야 합니다. 누구나 꿈을 꾸는 세상, 많은 이들이 목표한 바를 이루도록 동기와 영감,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이승한 회장은 칠십 평생을 사는 동안, 그 자신이 꿈과 상상을 현실로 이루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는 영원히 늙지 않는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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