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침대옆버스 Dec 04. 2023

습관

2023년 ver.

 한때 주변에서 '2020, 2021은 한 해로 쳐줘야 한다.', '활동에 제약이 많다 보니, 진짜 한 게 없다.'는 설움 섞인 이야기를 들었다. 2023년에는 만 나이가 도입된 것이 '잃어버린 2년'을 메꿔주기 위함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접했다. 올해 직장인 5년차, 기간으로는 만 4년이 지난 나의 경우 저연차이자 팀 이동 등으로 비교적 해마다 구분이 쉬웠다. 그러나 이미 직장 내 반복되는 업무에 익숙해진 근속자라면 팬데믹 시기가 잔잔하게 흘러가지 않았을까 싶다. 여행을 못 가니 길게 휴가를 낼 의욕이 사라지고, 확진자 급증으로 인해 타지 출장이 지양되는 건 물론 오프라인 행사 등도 줄줄이 취소되는 판국이었으니까. 재택근무를 할 때 잠시 파자마 속 몸은 편했을지 몰라도 콧바람 쐴 환기는 확실히 부족했다.


 그리고 팬데믹이 끝난 지금도, 어쩐지 팬데믹 이전과는 다르다. 연말연초 모임을 잡을 때 인원수를 고려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필수적으로 여겨지진 않는다. 영화관 방문 대신 집에서 OTT 시청을, 자리를 비켜야 하는 식당 대신 여유롭게 오랫동안 얘기 나눌 집에서의 만남이 늘어났다. 내 주변에서만 일어난 변화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이 생활에 적응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바뀌지 않은 게 있다면, 한 해가 끝날 무렵 근황을 나누다 슬슬 다음 해를 정비해 보는 것이다. 내년에는 졸업작품에 집중해야지, 운동을 시작해야지, 가까운 사람에게 잘해야지, 책을 많이 읽어야지. 스케줄러를 미리 사서 중요한 목표를 혼자 혹은 누군가와 같이 채운다. 오랜만에 2021년 글쓰기 모임 주제로 나열했던 '20년 동안 경험할 10가지 일'을 살펴보았다.


1. 기숙사를 탈출해 독립공간에서 거주하기 

 아직 회사에서 제공하는 기숙사에 거주 중이다. 1인실이어서 사는 데 딱히 불편함은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떠나야 할 곳이니, 내년 가을쯤에는 집을 알아볼 계획이다. 주로 기숙사 혹은 부모님 댁에서 지냈던 게 전부여서, 전세/월세/보증금 등 집 구하는 절차 및 기준을 너무나도 모르는 상태다. 내년부터는 진입 장벽을 뚫고 차근차근 알아가 봐야겠다.

-> (경험완료) 2022년 하반기 기숙사 만 3년을 채우고 회사와 적당한 거리에 위치한 오피스텔로 거처를 옮겼다. 전세사기 기사가 많이 나올 때라 걱정이 많았는데, 전입신고 등의 과정을 거치며 미세하게나마 집 계약을 훑을 수 있게 되었다. 


2. 부모님께 주기적으로 용돈 혹은 선물드리기

 생신이나 특정 기념일을 제외하고는 용돈을 드리지 않고 있다. 20년 안에는 아빠께서도 퇴직을 하실 테니, 재산 보유량(!)을 떠나 그래도 용돈을 드리면 기분 좋아하실 것 같다. 한 가지 고민은 엄마의 경우 영 자신을 위해 쓰지 않는다. 어깨가 불편하신 엄마를 위해 마사지 정기 회원권은 꼭 드리고 싶다. (올해 생신 때 1회로라도 예약해 드렸었는데 코로나 심하다고 안 가서 슬펐다.) 아니면 두 분만 호텔에서 편히 쉬시도록 미리 예약을 하든가, 돈 걱정 없이 온전히 시간 보내시면 좋겠다.

-> (경험미완료) 안마의자를 사드리기 위한 적금을 모아 올해 드리고자 하였으나 큰돈 쓸 필요 없다고 거절하셨다. 여전히 특정한 기념일에 용돈을 드리는 수준인지라 내년에는 어떤 식으로 부모님께서도 탐탁해할 선물을 전달할지 고민해 봐야겠다.


3. 동생과 둘이서 여행 가기

 '엄마 아빠가 없으면 나랑 동생만 남는다.' 그냥 당연한 소리인데도, 눈이 시큰해지는 문장 중 하나다. 취업 이후 동생과 따로 살면서 사이가 소홀해지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적당한 거리감으로 인해 오히려 만날 때면 더 대화를 자주 하게 됐다. 운전이 익숙해지면 동생과 국내는 물론 국외도 함께 가서 좋은 볼거리를 선사해주고 싶다.  

-> (경험미완료) 동생이 부모님과 함께 내가 사는 지역으로 놀러 온 적은 있으나, 동생도 나도 정신없이 바빴던 해인지라 여행을 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틈틈 서로 안부도 묻고 집에 가면 대화도 나눴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4. 가족 외 타인과 동거하기 

결혼과 육아는 확신이 없다. 그러나 애인과 동거를 해봤으면 한다. 애인이 아니라도,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처럼 마음 맞는 타인과 함께 살아볼 의향이 있다. 나는 집을 꾸미는 데 큰 욕심이 없는데, 누군가와 같이 산다면 '집'에 대한 개념도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다.

-> (경험미완료) 기숙사를 떠나 오피스텔로 독립한 것인 처음인데, 몇 평 집이 넓어져서인지 처음에는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1년이 넘은 지금 여전히 내가 어떤 식으로 집을 관리하고 사용하고 싶은지 알아가는 단계다. 여전히 '20년 안에는 시도하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다.


5. 친구에게 요리해 주기   

 김혼비님의 책 <다정소감>을 보고, 유독 친구에게 요리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인테리어에 이어 요리 역시 관심이 없고, 나 혼자 먹는 거면 외관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잘해주고픈 마음'을 드러내기에는 요리가 적격이라 생각한다. 상대가 좋아하는, 건강했으면, 힘냈으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메뉴를 고르고, 준비하고, 만들고, 같이 먹는 그 순간들이 그날의 만남을 더 오래 기억하도록 만들 것이다.  

-> (경험완료) 처음에는 사과 깎기도 서툴렀는데, 10번 이상의 집들이를 하면서 꽤나 여러 음식을 도전해 보았다.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프랑스식 당근샐러드 '당근라페'고 만들고 가장 뿌듯했던 요리는 '호박된장잎'이다. 


그 외 부연설명이 없는 목표는 아래와 같다.

6. 어린이들에게 잘하기(경험 중)    

7. 어깨 펴고 자세에 신경 쓰기(경험 중)

8. 책 최소 두 달에 한 권은 읽기(경험 중)  

9. 산책하기, 걷는 게 힘들어진다면 스트레칭 등 홈트레이닝이라도 하기(경험 중)

10. 수입량에 상관없이, 스트레스를 핑계 삼아 소비하지 말기(경험 중)


 다시 살펴보니, 내가 적은 내용은 20년 내 일어날 '사건'이라 봐도 되는 것인지 확신이 안 선다. 그보다는 '꾸준히 하길 바라는 반복적 행위'의 성격이 강하다. 특히 6번부터 10번은 그냥 다음 해부터 당장 지켰으면 하는 것들로 한정되었달까. 2n 년을 살면서 형성된 동그란 나의 생활관 안을 빙글거리며 글을 쓴 기분이다.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은데 특별한 사건을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아 머쓱해졌다. 10번까지 채운 다음에야 떠오른 보다 '사건스러운' 것을 지금이라도 써보자면, 1) 가수 윤지영 씨 콘서트 가기 2) 한복 혹은 생활한복 소장하기 3) 해외여행 시 입양 예정 동물의 비행기 탑승 돕기 4) 떡 만들어보기 정도가 있겠다.


 나는 가수 윤지영 씨가 오래오래 노래를 하셨으면 좋겠고, 한복의 멋짐을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봉사자가 없어 멍멍이의 해외 입양이 무산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갓 나온 따끈 쫄깃한 떡을 내가 직접 만들고 먹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그런데도 처음부터 떠오르지 않았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아마 그것들이 '습관'이 아니어서인듯하다. 내 인생에 예기치 못한 짜릿한 일이 불쑥 나타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설령 나타났다 해도, 그것에 대해 평상시 나의 기여는 일절 없을까? 하루하루 되풀이하는 어떠한 태도나 행위가 색다른 이벤트가 찾아올 가능성을 높여준다고 믿는다. 그리고 꾸준하게 반복한다면 내가 지향하는 사건의 빈도도 늘어나는 셈이니, 결국 10개를 썼지만, 100개의 사건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앞으로 만들어갈 사건 같은 습관, 습관 같은 사건들이 기대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