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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옆버스 Jul 07. 2024

속 빈 강정의 길

조식+30분 달리기로 얻어낸 것

 얼마 전 SNS에서 각자 어떤 상태로 몸무게를 재는지에 대해 답변하는 게시물을 봤다. 크게 '당연히 옷 입고 잰다'와 '속옷 혹은 맨몸으로 잰다'로 나뉘었는데, 서로의 측정 방식에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그 밖에도 '아침에 일어나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여야 한다', '화장실에서 대소변을 배출한 이후여야 한다' 등의 추가 전제조건이 붙었다. 나는 일상복보다는 가벼운 잠옷을 입은 채 공복 상태에서 재는 몸무게가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종합병원 건강검진 시, 하루 전날 저녁식사 이후부터 금식한 채 인바디를 측정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또한, 이때 착용하는 환자복은 얇은 잠옷 수준으로 가벼워 옷가지의 무게를 최소화하는 방향이다. '다가온 것도, 떠나보낼 것도 내가 아니다.'는 게 몸무게 측정 논쟁에 대한 나의 입장이다. 목적어 없이 쓰니 무소유 지향자의 어록 같아 웃기다. '지금은 몸속에 있으나 밖으로 떠나보낼 것'에 대한 나의 간절함을 웃음만으로 설명할 순 없겠지만.


 언제부터 속을 비우는 게 중요했는지 회상해 보면 초등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방광이 작다. 다른 사람의 방광과 내 방광을 한 자리에 두고 실측할 수는 없으나, 같은 용량의 액체를 마셨을 때 화장실 반응이 빨리 오는 건 대부분 내쪽이었다. 즐겨 듣는 팟캐스트 채널에서 방광이 작은 경우를 '소방광'이라 표현하고 이들의 애환을 사연으로 모집한 적이 있다. 나만 이동시간과 화장실 존재 여부에 따라 마시는 물의 양을 조절하는 게 아니구나 싶어 위로가 됐던 회차다. 아무튼, 쉬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본격적인 단체생활을 시작하고 유치원 때보다 집과의 거리가 멀어진 초등학생 1학년 소방광 씨는 불쑥 찾아오는 신호에 항상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가곤 했다.


 화장실 갈 주기가 남들보다 자주 찾아온다는 걸 파악한 이후로는 당장 신호가 없더라도 갈 수 있을 때 최대한 가려 했다. 가뜩이나 물도 많이 마시는 편이었어서 쉬는 시간마다 물통을 들고 부지런히 식수대와 화장실을 오고 가며 안정적인 초중고 생활을 보냈다. 변수는 대학교 입학과 함께 찾아왔다.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3시간으로 이동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차라리 다행인 건지 버스로 한 번에 쭉 가는 것은 아니었고, 학교 가는 방향 기준 1) 광역버스(50분)->시내버스 A(40분) 2) 광역버스(50분)->시내버스 B(2분)->지하철(30분) 두 가지 코스로 주로 다녔다. 처음에는 광역버스로 한강을 지날 때부터 배에 신호가 오면 시내버스를 놓치더라도 광역버스 내린 곳에서 다소 떨어진 공중화장실에 달려갔다. 그러나 시내버스 A와 B 모두 배차간격이 길고 타는 사람들도 많다 보니 나중에는 배를 부여잡고 두 번째 코스의 지하철까지 꾸역꾸역 도착했다. 아찔한 순간을 몇 번 겪고 나니 아침에는 가급적 무언가를 먹지 않고, 전날 먹은 것도 무조건 집에서 비우고 나가야 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를 위해 일찍 일어나는 순기능과 불안이 해소되지 않으면 도리어 늦게 출발하는 역기능이 동시에 생겼다.


 나름 요령을 찾았다고 생각했으나 2024년 1월 일본 오사카 여행에서 다시 위기를 맞이했다. 당고, 푸딩, 와라비모찌(물방울떡), 야키니쿠, 타코야끼, 오코노미야끼 등 단 맛이 강조된 본토 음식을 많이 먹어서였을까. 평소 생활패턴과 달리 숙소를 나설 때 화장실에 가지 못했다. 3일 누적으로 빵빵해진 배와 잔뜩 부은 얼굴에 괴로워 검색해 보니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달고 짠 음식이 체내 수분을 앗아가 변비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며, 한 블로그에서는 일본 여행 당시 유제품을 먹고도 도무지 해결이 되지 않아 현지 변비약 제품으로 효과를 봤다는 생생한 후기를 남겼다. 나 역시 한국에서 챙겨 온 유산균을 매일 한 포씩 먹고 있었고, 밀어넣기 전략으로 배불러도 최대한 먹은 상태였다. 쉬운 해결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최대한 빨리 더부룩한 상태를 벗어나고 싶었다. 처음으로 변비약을 구매했고 귀국하는 날에서야 비로소 가벼운 발걸음을 찾았다.


 시간이 흘러 3박 4일도 아닌 9박 11일 간 해외체류할 상황에 였다. 가뜩이나 북유럽에서는 버스 이동시간이 길다고 하던데, 자유여행이 아닌 단체일정이므로 임의로 화장실에 오래 버틸 수도 없었다. 응급상황을 대비해 일본에서 산 약도 두 알 챙겼으나, 다행히 섭취 없이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이번 기회에 한번 가볼까 반신반의하며 챙긴 운동복 두 벌 덕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숙소에 마련된 체육시설로 내려갔다. 여러 운동기구가 있으나 가장 마음 편하게 올라타는 건 러닝머신이다. 'Runday' 어플의 커리큘럼을 따라 30분 달리기에 성공한 게 작년 초였을 거다. 엄청 빠른 속도로 달리는 건 아닐지라도 이제 30분 내내 실내에서 달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숨이 차고 땀이 나서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오기는 하나, 내 앞에 있는 숫자가 30:00에 이르기 전에 내려온다면 이미 할 수 있는데도 엄살 부리는 것 같아 어떻게든 버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목표가 있기에 더더욱 멈출 수 없다. '이번 운동하고 조식 먹고 나는 무조건 화장실에서 속 비우고 버스에 탈 테야.' 나만의 오전 일정을 되뇌며 괜히 상체도 앞으로 쏠리지 않게 바른 자세로 고쳐 스퍼트를 낸다. 일해라 내 소화기관.


 평소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는다. 그래서 해외여행 중 호텔에 묵더라도 조식비용을 따로 지불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번 해외 체류에서는 대상자 모두  조식이 자동신청된 상태였다. 시차 적응을 위해 아침에 커피 한 잔은 마셔야겠다는 생각으로 첫날 들렀던 게, 현지 뷔페식 구경하는 데 재미가 들려 단 한 번도 아침 식사를 거르지 않았다. 북유럽 식단에 놀란 점은 한국보다 탄수화물 섭취량이 현저히 적었다는 것이다. 식사용 빵은 대개 담백하고 밀도가 높아 한두 조각으로도 충분히 포만감이 생겼다. 이러한 빵을 제외하고는 파스타나 시리얼 종류는 적었다.(시리얼 자체의 종류보다는 그에 곁들여먹을 혹은 요거트나 오트밀죽에 첨가할 견과류 옵션이 많이 있었다.) 일반빵 외에도 비건, 글루텐프리라 표시된 별도 공간이 항상 마련돼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탄수화물보다는 치즈, 요거트, 햄, 소시지, 계란 등 지방과 단백질을 함유한 식재료가 훨씬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매일 챙겨 먹은 건 'quark'라고 쓰인 그릭요거트 재질의 무언가였다. 검색해 보니 독일어로 '크바르크'라 읽으며, 우유를 발효시킨 단백질이라 했다. 유청을 걸렀다는 점에서는 평상시 알던 그릭 요거트의 원리와 비슷하고 맛도 큰 차이가 없었지만, 이곳에선 생치즈의 일종으로 분류한다는 게 신기했다.


 이렇게 뛰고 먹고 씻고 나면 자연스레 화장실에서 속 비우고 나올 수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처럼 항상 개운했던 건 아니지만 그에 너무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버스 배차 간격처럼 내 장에게도 닦달하지 말고 시간을 줘야지. 다행히 버스로 이동할 때마다 여행사 가이드께서 화장실을 자주 안내해 주셨고, 덕분에 물도 충분히 마실 수 있었다. 아무 실속도 없는 것을 이를 때 '속 빈 강정'이라고 부른다지만 내게는 그것의 형태가 제일 부럽다. 식단과 운동에 최선을 다할지라도 항상 간절히 바라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기에. 원래부터 타고난 게 속이 비어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싶다. 게다가 최근에는 요거트의 잦은 섭취가 여성호르몬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하여 어떤 대안을 마련할지 고민이다. 늘 긴장 속에 살지만, 이렇게 애쓰는 덕분에  앞으로 더 건강해질지도 모르겠다. 겉이 바삭 단단해지는 것이라도 강정과 닮면 영광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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