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라크네 Feb 22. 2024

삶을 견딜 수 없을 때마다 찾아가는 한 사람

때로는 절망이, 때로는 위로가 되는 사실. 삶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만사 완벽하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남들 뒤에서 모종의 문제로 괴로워 운다. 자원의 불평등은 확실하지만 슬픔의 불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아마 슬픔을 경험하라는 의도로 인간을 세상에 내놓았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이렇게 남녀노소, 주인과 노예 모두가 괴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내 앞에 놓인 슬픔은 여전히 나의 몫이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자기위로는 소외감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어도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특히나 고통의 농도가 유달리 진한 시기에는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조차 자기혐오로 돌아와 나를 찌른다.


나에게는 서른 한 살이 유독 아픔의 농도가 진한 시기였다. 쌓인 스트레스가 폭발해 몸에 온갖 통증이 닥쳐왔고 극심한 불안증과 우울감으로 늘 머리가 뿌얬다. 깊게 잘 수 없어 하룻밤동안 대여섯 번씩 깨기도 했다. 살면서 가장 불행한 시절은 아니었지만, 불행의 터널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시기였다.


그럴수록 많이 걸었고, 잘 먹었고, 매일 작업했다. 그리고 짬짬이 집단지성으로 실시간 업데이트되는 전국 신경정신과 추천지도를 훑어보며 나를 구해줄 만한 병원을 찾았다. 나는 생에 집착이 강한 편이었다. 살고 싶었고 가능하면 행복하게, 잘 살고 싶었다.


어느 볕 좋은 날이었다. 평소처럼 맥도날드에서 버거세트를 먹고 노트북이 든 백팩을 맨 채 느릿느릿 카페로 걸어가고 있었다. 햇살이 버터 하나쯤은 쉽게 죽으로 만들 만큼 따사로웠다. 공기에서 풀냄새와 햇살 냄새가 났다. 만물의 성장을 돕는 다정함의 냄새였다. 소설가 김유정이 <봄봄>에서 ‘이불 속같이 따뜻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고 표현했던 바로 그런 봄날이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잎사귀가 다 떨어진 겨울이었다.


인적 없는 버스정류장에서 엉덩이를 붙였다. 그늘 아래에서 살랑살랑 밀려드는 봄바람을 맞으며 금빛으로 물든 세상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쓸쓸해졌다. 나는 도착하는 버스마다 타지 않는다는 뜻으로 손을 휘휘 저어보이며 한동안 앉아있었다. 멍하니 건너편 인도에 우거진 풀무더기를 바라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의 후배라면, 나는 무슨 말을 해줄까.’


잠에서 깨어난 듯 정신이 명료해졌다. 1인칭 주인공시점이 갑자기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변했고, 동시에 두통을 일으키는 상념과 뱃속을 아프게 휘젓는 불편한 감정들이 사라졌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 것이다.


줄곧 내가 한심하고 유약하다고 생각해왔다. 지금 이렇게 힘든 건 전부 내 잘못이라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울증 환자들의 사고는 본인의 단점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스스로 멈출 수가 없다. 장염환자가 느끼는 통증처럼 병의 증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자신만큼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남들은 잊어버렸을 오래전의 실수들과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렸던 모자란 생각들을 낱낱이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우울증 환자의 마음속은 평생 따라다닌 스토커가 증인으로 출석한 24시간 청문회와 같다. 내 편은 하나도 없이 무차별적인 질타가 이어진다.


시점을 바꾸니 청문회의 주인공에서 방청객으로 입장이 달라졌다. 나는 마치 남을 바라보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가 그렇게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병이 얼마나 악의적으로 내 삶을 편집했는지 명약관화하게 와 닿았다.


후배는 죄 없이 고초를 치르고 있었다. 나라도 변호를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떡 일어나 카페로 갔다. 노트북을 열어서 새 한컴 오피스 창을 켰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썼다. 너는 좋은 사람이라고. 지금 이렇게 힘든 이유는 아파서일 뿐이라고. 너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나를 믿으라고.


반 페이지쯤 쓰고서 반복해서 읽었다. 청문회장은 어느새 고요해졌다.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고 있던 후배가 나를 응시했다. 웃지 않았지만 울고 있지도 않았다. 그는 하얀 화면 위로 이렇게 말했다.     


‘고마워요.’     


나는 이 짧은 대화를 저장했다. 제목은 ‘선배님과의 대화’였다.


그 후에도 우울감은 계속되었다. 자기혐오, 불안, 좌절감. 그럴 때면 ‘선배님과의 대화’를 열었다. 그곳에는 선배님이 있었다. 나는 후배의 입장으로 구구절절 하소연했다. 내가 얼마나 추한지, 앞날은 얼마나 절망적인지, 세상이 얼마나 두려운지. 선배님은 참을성 있게 들어주고 위로와 조언을 했다. 내가 금새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면 냉정한 충고를 하기도 했다.


선배님은 내가 자책을 할 때면 유독 매섭게 생각을 중단시켰다. 그 단호함이 믿음직했다. 선배님과 대화하고 나면 늘 전보다 편안해져 있었다.


위에서 말했듯 자신만큼 스스로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없다. 안과 밖 면면을 다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감정 상태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사람도 자신뿐이다. 사랑이 필요한지, 조언이 필요한지, 아니면 정신 차리라는 뜻으로 팩트폭력을 가해야 할지. 나 자신에게서 두 세 발자국 떨어져서 관찰하다보면 다 보인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지혜의 심지가 있다. 마음의 척추라 할 수 있는 그곳은 스스로와 대화하다 보면 누구나 닿을 수 있다.


‘선배님과의 대화’ 파일을 처음 만든 날짜가 2022년 5월이다. 그 후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나는 대화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길고 편안한 상담과 신뢰도 높은 약처방으로 유명한 서울의 신경정신과를 찾아내었다. 2023년 6월까지 내원했고 그 후로는 약을 먹지 않고 있다. 현재 나는 잘 자고 잘 먹으며 잘 산다.


병에서 빠져나온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약과 상담이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병원을 찾아서 퍽 다행이다. 그러나 또다른 조력자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다. 바로 나의 선배님. 그를 통해 늘 자책만 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도울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지금도 도움을 줄 준비를 하고 내 삶 한편에 서 있다. 선배님의 존재는 우울증을 통해 잃은 것뿐만 아니라 얻은 것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그것은 내게 아주 의미 있는 위로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 안에는 두 소녀가 살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