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초반의 나는 지치고 혼란해질 때마다 반야심경이나 금강경 같은 불경을 들었다. 내가 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도 바로 이때부터였다.
물론 뜻을 알고 들었을 리는 만무했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해석본을 찾아보면서 들었었다. 영화 천녀유혼에서 장국영이 반야바라밀로 귀신을 쫓았던 장면을 보았던 적이 있었는데 나또한 반야심경을 들음으로써 내 운을 가로막고 있는 잡귀 같은 잡념들을 퇴마 해버리는 상상도 조금은 했었다. 스님들이 일정한 톤으로 외는 염불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기에 딱이었다.
특정 대상의 과거가 궁금해지는 게 곧 관심의 시작이듯 불교의 가장 초기 경전인 수타니파타 또한 자연스레 접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수타니파타의 유명한 구절인 "무소의 뿔"의 전문이 너무 궁금하기도 했다.
큰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또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 수타니파타 무소의 뿔 中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갈고닦아 열반에 이르러 결국 자기 자신이 부처가 되는 불교사상 일부분의 과정을 명쾌하게 보여주는 구절이다. 수타니파타의 주된 내용은 석가의 가르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서 이야기 한 무소의 뿔이 아닌 다른 파트에서도 불교에서의 번뇌에 관하여 많은 깨달음을 준다.
또한 나는 니체의 사상도 좋아하는데, 불교 사상은 니체의 위버멘쉬와도 조금 닮아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용감하게 받아들이고 삶을 긍정하여 결국 위버멘쉬 즉, 초인이 되자는 것이 열반의 경지에 오르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상념을 벗어나자는 것에 방점을 둔다는 점에서 둘의 공통점은 아무래도 자유의 추구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