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만들어내는 신선함
회사를 다니고부터는 강남역에 갈 일이 점점 없어진다. 주로 집이나 회사 주변에 있는 익숙한 장소들을 방문하거나 사람이 너무 많은 곳들은 피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가끔씩 스쳐 지나갔던 인연들의 만남 장소로는 또 강남역만 한 곳이 없기도 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오랜만에 강남역에 들르게 되었고, 저녁 시간까지는 1-2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서 보니 신논현 사거리에 왠지 고급스러워 보이는 새로운 커피숍이 생긴 것이 아닌가? 참지 못하고 일단 들어가 보았다.
팀 홀튼의 첫인상은 뭐랄까, 스타벅스, 커피빈, 폴바셋과 같은 그 수많은 글로벌 스탠더드 커피 브랜드 중에서도 유독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다. 인테리어나 이런 부분들은 한국 내 고급화와 현지화를 위해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은데, 커피나 도넛 자체는 또 구분되는 명확한 아이덴티티가 있다. 기반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커피를 접하다 보니 다녀오고 나서 여러모로 궁금증이 생겨 DIY로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캐나다의 국민 커피 브랜드
팀 홀튼은 1964년 전설적인 아이스하키 선수였던 팀 홀튼이 직접 개업한 브랜드로, 동네에 있는 작은 도넛과 커피를 파는 가게로 시작하여 점차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며 캐나다 전역으로 확장한 명실상부 캐나다의 국민 커피숍이 되었다. 현재는 글로벌 전역에 약 5,000개의 프랜차이즈 지점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를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커피 전문점인 만큼, 60년이라는 오래된 기간을 거쳐 캐나다 사람들의 대중적인 취향을 담고 있는 브랜드로 발전하게 되었다. 팀 홀튼은 커피뿐만 아니라, 캐나다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많이 소비하는 음식인 도넛 전문점이기도 하다. 그 외 샌드위치, 스무디, 케이크, 수프 등 약간의 식사 대용을 할 수 있는 음식들과 함께 대중성의 필수적인 조건인 저렴한 가격까지 갖추고 있다.
음식뿐만 아니라 단풍잎이 들어간 로고나 강력한 레드 원색 느낌의 디자인과 인테리어도 명확한 캐나다스러움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취향이 지리적으로 바로 옆에 있는 이웃나라 미국 사람들에게도 통했는지 미국에서도 꽤나 많은 지점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독특한 시그니쳐 메뉴, 오리지널 아이스캡과 팀빗
오리지널 아이스캡은 처음 먹었을 때 미묘한 느낌과 함께 어디선가 많이 먹어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더위사냥이나 커피믹스를 아이스 슬러시로 만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굳이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고소하고 고급스러운 더위사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커피 자체가 더위사냥이나 믹스커피보다는 조금 덜 달기도 하고, 훨씬 고소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꽤나 감칠맛 있게 다가온다.
한 입에 쏙 들어갈만한 앙증맞은 사이즈인 팀빗 도넛들도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일반 도넛과는 다른 이국적인 생강, 시나몬 향이나 메이플 시럽 느낌의 단맛이 강력하게 들어간 맛이다. 예전에 캐나다를 방문했을 당시 흔히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도넛의 맛이 바로 생각날 정도였다. 마라향으로 따지면 70-80%는 현지에서 먹는 느낌과 가까울 정도이니 호불호가 꽤나 갈릴 수 있는 도전적인 시도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역시 한국에서 자고나란 사람의 입맛에는 많이는 못 먹는 맛이기도 하고.
하지만 문득 커피나 도넛의 맛도 별 특색이 없었다면, 이렇게 팀 홀튼에 대한 개별적인 글을 올렸을까 생각하니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결국 커피 브랜드도 음식이니만큼 그 본질에서의 차이점과 엣지가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여기는 먹자마자 바로 올려도 되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연이지만, 임팩트 있었던 순간을 추억하며
팀 홀튼이라는 브랜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엄청 특이한 브랜드는 아닌데 왜 기억에 남을까? 캐나다의 정수를 담고 있는 브랜드가 글로벌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희석시켜야 할까? 그 비중은 얼마나 될까? 진출한 국가의 취향과 완전히 다른 물품이면 어떻게 하지? 한국적인 K-컬처도 결국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닐까? 등등… 결국 정답은 없겠지만 어떠한 방법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 혹은 엣지를 만들어 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만국공통이지 않을까 싶다.
오래도록 쌓아 올린 60년 간의 히스토리와 캐나다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을 반영하고 녹여낸 과정 속에서, 적어도 팀 홀튼은 어느 정도는 그 맛의 원형은 보존을 하기로 결심했는지도 모르겠다. 신논현역 사거리의 그 조그마한 가게에서조차 캐나다의 향이 꽤나 짙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외 공간의 경험이나 인테리어적인 측면에서 그 브랜드만의 정말 독특한 느낌이 있었냐라고 하면 특별하게 다가오는 점이 없었을 정도로 국내에 막 들어온 전형적인 신생 글로벌 커피 브랜드와 같은 느낌이긴 했다. 이렇게보면 국내 현지화를 잘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가격은 캐나다에 비해서 많이 비싸다고 느껴질 정도로 완벽한 국내 현지화에 성공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시그니처 메뉴인 아이스캡에서만큼은 캐나다스러움뿐만 아니라 일부의 한국스러움도 느껴진다. 호불호가 분명 갈릴만한 맛임에도 불구하고, 더위사냥이나 커피믹스라는 예전의 어릴 적 추억의 편린을 소환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추억과 문화에 얽혀있는 것들은 후하게 값을 쳐주기 마련이다.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의 정반대의 충돌 안에서도 결국 무언가를 이어주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다른 국가에서는 몰라도, 한국에서만큼은 무언가 연결점이 생기고 신선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있어서 그런지 그 브랜드를 좋아하는 팬덤이 생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느낌? 뭐, 적어도 일단 한 명은 확보한 듯하다. 가끔씩 그 고소함이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은 가볼 예정이니까.
세 줄 요약
1. 캐나다스러움의 원형적인 가치가 잘 보존된 브랜드
2. 독특한 맛의 시그니처 메뉴로 확실하게 각인이 되고 있는 브랜드
3. 한국과 캐나다라는 이질적인 두 문화의 만남 속에서도 공통점으로 신선함을 환기시켜 주는 브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