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나고 출근한 목요일은
월요일만큼 정신없고 학교생활 버튼이
잘 눌려지지 않는 날이었다.
1, 2교시 연강을 마치고 3교시 공강 시간에
밀린 업무와 수행평가 결석생 명단을 정리한 후, 다음 단원 수업 준비도 조금 하고,
장시간의 공복을 곤약젤리 한팩으로 해소시켰다.
50분의 공강시간은
말 그대로 강의만 비어 있을 뿐이었다.
수업에 대한 고민을 이어하고 싶지만
나에겐 4교시 수업도 있다.
점심시간엔 수행평가 결석생들이 와서
못다 한 평가를 하기로 약속했다.
주어진 식사시간은 15분이 전부다.
헐레벌떡 밥을 먹고 수행평가를 하려고
약속 장소에 갔다.
하지만 아이들은 제시간에 오지 않고
4명의 아이들이 5분 간격으로 도착해
같은 설명을 4번이나 하게 되었다.
시험 감독을 마치고
바로 5교시 수업을 다녀오니
나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의자에 반송장이 되어 앉아 있었는데
반가운 노크가 울렸다.
작년 제자다.
반가운 아이.
각별한 아이.
나의 진심을 본 아이.
나로 인해 변화한 아이.
나의 모든 행동의 선택과 결정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아이다.
작년에 내가 고통의 터널을 지날 때
아이는 그게 이별일지라도
이곳을 탈출하라고 간절히 바랐다.
무슨 일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나에게 있던 수많은 선택지 중
내가 택한 답을 안타까워하면서.
그 답이 가장 옳은 답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고.
나를 끝까지 믿어준 아이다.
고소, 악성민원, 상급자의 갑질
그 무엇도 아이는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선생님이 병가를 내실 정도라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죠.'라는 태도를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아이는 나로 인해
교사라는 꿈에 대한 결심을 굳혔다고 했다.
나는 좋으면서도 싫다.
내가 그 아이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라는 게 좋지만,
아끼는 아이가 이 힘든 길을 간다는 것이 싫다.
아까운 성적이라 더 싫다.
장난처럼 요즘 교대, 사범대의 높아진 자퇴율과 낮아진 합격 커트라인점수를 이야기했지만
아이는 웃음만 짓는다.
"저 같은 사람 아니면 누가 하겠어요!"
라며.
나는 아이에게서 나를 보았다.
저런 자신감, 책임감, 의미 부여하기, 가치 찾기가 나를 복직의 길로 오게 했다는 걸
다시 깨달았고,
나는 나의 교사 됨을 증명하는 이 아이가
몇 년 뒤 교단에 선,
그 미래에 잠시 다녀온 것 같았다.
자신감으로, 의미부여로
버틸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니까.
이젠 내가, 혹은 우리가,
교사가 될 아이들을 위해
교사의 직업적 권리와 권한, 누려야 할 인권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미래의 교사가
조금 더 안전하고
조금 더 보호받을 수 있도록
더 목소리를 내어 보자고
내 마음에 가장 크고 힘 있는 글씨를 눌러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