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진 Nov 21. 2024

생소한 생성문법 소개서 1

초보자가 쓴 초보자 가이드

노엄 촘스키(Noam Chomsky)가 1950-60년대 시작한 생성문법(Generative Grammar)은 현재 이론언어학의 주요 학파 중 하나이며 현재 내가 몸 담고 있는 전통이기도 하다. 언어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생성문법이나 통사론, 지배결속이론 등에 대해 들어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성문법의 가정이나 접근은 사실 언어에 대한 전통적, 인지적 접근과 사뭇 다른 측면이 많아 낯설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전공을 하고 있다는 나도 생성문법의 기본적 접근방법이나 가정에 대해 들어는 보았으나 이를 실감하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언어를 분류하거나 특정 언어의 문화적 배경, 역사적 변이, 어원, 사용 등에 집중하는것이 보통 언어학이라 여겨지곤 하는데, 생성문법 전통에서의 언어학은 전통적 접근과 여럿 다른점을 가지고 있어 배경지식이 없이 이 분야를 살펴보면 바로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나도 초보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그렇기에 같은 초보자 입장에서 가벼운 인트로를 작성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이 글을 적는다. 이 글에서는 생성문법의 특징과 핵심적 가정을 몇 가지 정리했다. 스스로의 복습이자 소개에 불과한 글이기 때문에 그렇게 훌륭한 안내서는 아니다. 재미로 읽어주시길 바란다. 


생물 언어학


자주 등장하는 '나무그림'은 대강 이렇게 생겼다

생성문법은 생물학적 언어학이다(Bio-linguistics). 이 부분이 아마 전통적, 인지적 언어학과 가장 다른 측면일 것이다. 생성문법은 언어와 언어기관(Faculty of Language)을 인간 특유의 생물학적 시스템으로 보며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시스템이라고 간주한다. 이 가정은 인간 우월주의적 시선이며 비과학적인 가정이라는 비판을 왕왕 받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언어가 인간에게만 있다고 해서 생물학적으로 인간 종이 다른 종 보다 우월하다는 근거가 되진 않는다. 예를 들면, 파충류는 열 감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파충류가 인간보다 우월하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언어 혹은 언어 기관이 인간 특유의 체계라는 증거 중 하나는 문법의 유무인데, 여기서 문법이란 재귀적(recursive)인 문장을 '이론상 무한히' 생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예를들면 이런 것이다.


1) 돼지다!

2) I like the girl who sent the letter to John who is my little brother whose car is very fancy...


대상물을 단발적으로 부르는 1번의 예시와 달리 2번의 예문을 잘 보면 관계대명사절이 계속 이어지며 문장이 한없이 길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고래에게 음운적 특성이나 문장을 조합하는 현상이 발견되었다고는 하나, 그들이 재귀적 문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 시스템은 언어와 다르다. 따라서 생성문법의 시각에서 볼 때, 언어를 사용할 수 있으려면 생물학적으로 인간이어야 한다. 이를 'Genetic Endowment(유전적 자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간단히 말해 인간은 날개를 만드는 유전적 자질이 없어서 날개를 만들지 못 하는 것 처럼, 벌은 언어기관의 기초가 되는 유전적 자질이 없어 언어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와 같은 생물학적 언어관은 자연스럽게 '보편문법(Universal Language)'으로 이어진다.


보편문법 (Universal Grammar)


앞에서 언어란 인간 종 특유의 시스템이며 문장을 생성할 수 있는 문법에 기초해 작동한다고 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 문법이란게 문화나 지역이 아닌 인간 '종'에 기초한다면 모든 인간 언어는 어떤 면에서 모두 같아야만 한다.


3) 언어는 인간의 생물학적 기관에 기초한 체계이다


그렇다면 그 언어가 프랑스어든, 한국어든, 영어든, 줄루어든, 터키어든 모두 생물학적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니까 모든 자연 언어는 어떤 측면에서는 같다! 는 말이 된다. 굉장히 급진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과 한국어를 쓰는 사람은 소통이 불가능한데 어떻게 서로 같다는거지?


이에 대한 생성문법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4) 보편문법 UG → (주요 언어 데이터 PLD) → 특정 언어 문법 PLG 


UG란 앞에서 말한 보편문법, PLD란 아주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접하는 모국어 데이터 (Primary Language Data), PLG는 PLD에 의해 조정되어 구성된 특정 언어 문법(Particular Language Grammar)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본래 타고난 언어기관, 그리고 그 안의 보편적 문법을 유아기 및 성장기에 접하는 모국어 데이터를 통해 세부적으로 조정하여 모국어 문법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여기엔 질문이 뒤따를 수 있다.


첫째, 정말로 모든 언어가 공통점을 보여주는가? 앞에서 말했듯, 이미 특정 언어 문법 단계로 이행된 이후 발현되는 것이 언어임을 고려한다면, 표면적으로 각각의 언어는 다를 것이다. 이것은 직관적인 관찰, 즉 독일어와 일본어가 다르다는 느낌과 일치한다. 하지만 언어의 기본적 보편성을 지지하는 여러 증거가 있다. 어떤 언어인지와 관련 없이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조건들이 있으며 일관적으로 관찰된다. 대표적으로 '병합(Merge)'라고 부르는 개념은 언어 보편적이다. 병합은 언어적, 통사적으로 작은 단위를 합쳐 더 큰 단위를 만드는 기제이다. 


5) the + girl = the girl


분명히 'the'와 'girl'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어휘 요소이다. 하지만 인간 언어의 경우 이러한 각각의 요소를 합쳐 더 큰 단위로 만들 수 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단위는 문장에서 하나로 움직인다. 이는 한국어에서도 당연히 관찰되는 특징이다. 예를 들면 '영희' 와 '누나'는 모두 각각 존재하는 어휘 요소이다. 하지만 이들은 얼마든지 '영희 누나'로 합쳐질 수 있으며 이러한 단위는 문장에서 하나로 움직인다. 즉, 일종의 보편적인 연산 과정이 언어의 종류를 막론하고 존재한다.


둘째, 모국어 데이터(PLD)에 의해 보편문법이 조정된다는 (4)의 과정은 설득력이 있을까? 여기에 대한 핵심적인 설명은 바로 '자극의 빈곤(Poverty of the stimulus)'이다. 자극의 빈곤이란 인간 아이가 처한 언어적 환경을 말하는 것으로 최종적으로 습득하게 되는 언어 능력이 이해하고 생성할 수 있는 문장 대다수는 언어 습득 과정에서 데이터로 미리 주어진 적이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앞에서 말 한 설명은 물론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바 대로 언어는 무한대의,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문장을 생성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지금 내가 쓰는 글은 방금 전 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조합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무슨 의미냐면, 지금 막 새로이 생성된 문장을 미리 알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문장을 만들 수도, 이해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런 능력을 가지는 것은 성인이 되기 한참 전이다. 


이런 현상은 (5)에 제시된 과정으로 설명 가능하다. 보편문법을 가정한다면 인간은 태어날 때 부터 이미 언어에 대한 내재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 성장 과정에서 모국어 데이터를 통해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의 핵심이 가능한 모든 문장, 표현을 '익히는' 것에 있지 않고 문법을 해당 언어에 맞게 조정하는데 있다고 한다면 전에 존재하지 않던, 특히 언어 습득 과정에서 부모나 주변인에 의해 한번도 주어진 적 없던 문장을 이해하고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왜냐하면 (적어도 생성문법적으로는) 문법 자체가 새로운 조합을 규칙 아래에서 생성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2편으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아무도 연구 안 할 것 같은 언어현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