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2화 (철학을 담은 드라마)
동경은 만약 10년을 더 산다면 돈을, 꿈을, 사랑을 원할 거라고 말했다.
시한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갑자기 원하는 것을 얘기하며 아쉬워한다.
그렇다면 시한부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이런 꿈을 가지며 살아갔는가?
사람은 누구나 공평하게 시한부 선고를 받고 태어난다.
그 남은 기간이 예상보다 짧을지 평균 이상으로 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불안함을 늘 갖고 있으면서도 나의 수명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며 살아간다.
죽을병이 걸려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건강했으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지금 당장 생이 끝나는 경우도 있다.
많은 철학자나 종교인들 또는 정신과 마음 관련 지식인들이 말한다.
오늘이 생애 마지막 날인 것처럼 후회 없이 살라고.
그런데 매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면 후회는 없을지 모르지만 좀, 아니... 많이 피곤할 것 같다.
그래서 우리 몸이, 우리 정신이 알아서 적당한 텐션으로 풀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맑은 정신으로 꼭 필요한 좋은 계획으로만 살아가는 것은 입력값에 움직이는 기계나 가능할 것 같다.
주어진 삶에게도, 삶을 가져가려는 죽음에게도 괴롭힘 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겪어야 할 운명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소녀신은 인간들이 가장 버티기 어려울 만큼 괴로울 때 신을 불러낸다고 했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너무 가혹한 상황에서는 나를 도와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한다.
나 또한 여러 번 그런 순간이 있었고, 특정 누구도 아닌 그 누군가를 간절하게 불러봤었다.
그래서 인간이 가장 괴로운 순간의 상태를 겪는 신이 등장했다.
신은 인간 주변에서 그 고통을 직접 느끼며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갖는다.
신은 상황을 모르지 않지만 모르는 척을 할 뿐 세상을 지켜보는 정원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신은 멸망이라는 나비를 만들었다.
멸망은 불행과 행운의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매 순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갈지를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