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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노 Mar 07. 2024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기 위하여

:re (떠나갈 채비)

 우리는 살아가며 참 많은 순간을 마주한다. 누군가와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와 관계를 단절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어찌 보면 나무와 참 많이 유사하다. 오래된 잎들을 바닥 아래로 떨어뜨리고, 새로운 잎들을 싹 틔운다. 계절이 변함에 따라 각기 다른 색들로 많은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나무가 낡은 잎들을 치워버리고, 새로운 잎을 피워내는 이 과정을 나쁘다고 평가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굴레이자 순례이기에. 그러나, 이러한 나무의 과정이 사람에게 펼쳐질 경우에 평가는 사뭇 다르다. 해왔던 것들을 모두 정리하고, 새로운 길에 첫 발을 내딛는 것을 누군가는 응원하고 격려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이에 의구심을 품고 반대하거나 비판한다. 이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 형성에 대한 평가, 기존의 인간관계의 변동에 대한 평가. 그렇기에 우리 인간은 떠나가거나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곤 한다.

 많은 사람이 그래왔듯이, 나 역시도 꾸준히 변해가고 있다. 낡고 오래된 잎들을 몸에서 훌훌 털어버리고, 새롭게 돋아나는 튼튼한 이파리들로 몸을 가꾸고 치장한다. 새로운 단장을 하는 것에 대한 평가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받을 수 없음이 분명하다. 다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많은 이의 공감 혹은 응원을 받고자 행동할 때가 많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다시 말해, 진정으로 본인이 원하여 잎을 갈아치우는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인 분위기나 흐름에 의거하여 자신을 재정립하는 것. 이러한 과정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요즘이다.

 필자는 성인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병역의 의무를 마치지 않았다. 장교 후보생을 준비하며 모집병의 기간을 후순위로 미루었기 때문에 후보생 신분을 그만둔 지금 23살이라는 나이임에도 아직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때때로 많이 곤란하다. 왜 아직도 병역의 의무를 마치지 않은 것인지, 혹은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직도 안 갔냐는지에 대한 물음 등이 주기적으로 등장한다. 대답하기 귀찮은 이유와 더불어 나의 행동을 그들에게 정당화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사로잡히곤 한다. 나의 개인적인 판단과 선택을 타인에게 정당화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들은 정말 궁금하거나 걱정되기에 그러한 의도가 클 것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직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내가 '남들에 비해 늦은 편'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며 알게 된 것은 대한민국 사람들은 너무 '빠른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무엇이든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결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특성에 불만은 없다. 다만, 나 역시도 이에 물들어 속도에만 시선이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늦을수록 돌아가라' , '급할수록 천천히 해라'라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닐 터. 알고 있음에도 행하지 못함은 초조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천천히 피어나고 싶은 요즘이다. 그 어떤 나무들보다 천천히 오래된 것들을 정리하며, 그 누구보다 소중하고 예쁜 잎들을 틔우고 싶다. 남들이랑 똑같은 나무가 아닌, 조금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가장 마지막까지 빛나고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잎을 가진 나무가 되고 싶다.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그들 곁에 조금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그런 그루터기가 되고 싶다. 늦었다고 생각이 드는 요즘 어찌 보면 가장 빠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곧 입대를 앞두었기에 마음이 불안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함에 사로잡혀 세상과 현실을 바르게 직시하지 못하고, 불만과 의심의 구덩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나는 그 어떤 나무들보다 어둡고 탁한 낙엽들을 피워낼 것이다. 24년 5월부터 25년 11월 혹은 12월까지 많은 나무들이 자신들의 잎을 갈아치우고 다시 틔워낼 것이다. 나는 그때도 지금의 잎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 마지막 잎이 떨어지고, 처음 새로운 잎이 돋아나는 그 과정은 누구보다 아름다울 것이고,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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