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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노 Jun 10. 2024

외부 공간

D+15

 처음이었다. 내 바로 옆에 있는 이들이 오늘이 나에게 어떤 날인지 알지 못한 것은. 그리고 나 역시도 오늘이 나에게 특별한 날이라는 것에 대해 실감하지 못한 것은.

입대를 하고 15일째 맞는 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그저 대기만 하는 상황은 내가 누군가의 축하를 받고자 18시까지 기다리는 과정을 미리 보여준 것은 아닐까. 신병임과 동시에 간부 퇴교생, 즉 무관 후보생이기에 더욱 힘들 것이 없었다. 편안한 주변 분위기와 누구도 터치하지 않는 자유. 그 속에는 누군가 모를 외로움이 자리 잡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은 외로움을 즐기다 못해 그 감정에 덮여 먹혀버린 나의 넋두리이자 한풀이일지도 모른다.


 18시가 되기 10분 전, 요 근래 느낀 그 어떤 순간보다 더 시간이 느리게 같던 것 같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군대라는 폐쇄적 장소에서 내가 타인과 접촉할 수 있는 것은 이 자그마한 단말기 하나뿐. 평생토록 몸담고 있던 그 외부 세계와 늘 손에 쥐고 있던 그 작은 단말기 하나가 어찌나 그립던지. 누구보다 빨리 가방 문을 열어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친한 친구들. 익숙한 이름들이 하늘에 비 오듯 쏟아지는 상황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예상하던 이름들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름도 보였다. 또한, 기대조차 하지 않았으나 나에게 물질적인 것을 대변하여 마음을 표한 이들도 있었다.


 너무나도 감사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와야 할 사람, 의외의 사람, 와야 하면서도 오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하여 내 인간관계를 점검했을 터. 지금은 그러한 저울질보다 내가 외부 세계를 등지고 내부 공간으로 들어왔음에도 기억해 준 이들. 그 사람들에 대한 압도적인 감사만이 남아있을 뿐. 다른 것들은 기억나지 않았다.


 당장 이곳을 뛰쳐나간다 한들, 사람들이 모여있는 시내 부근으로 가지 않는 한,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생활관, 자대에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 공간에 있을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만나고자 하며,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외부 공간에 홀로 떨어진 '나'라는 사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입대한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이에게 축하를 받았는지 또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축하받을만한 사람이라는 것.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아도 영원토록 내 머릿속의 그들의 이름이 크레딧처럼 펼쳐질 것 같다. 그야 내 평생 가장 외로운 생일일 테니. 그렇게 싫어하던 미역국이 먹고 싶은 것도 처음이고, 어린아이처럼 케잌에 초를 꽂고 축하 노래를 부르는 것이 무척이나 그리운 이 감정. 나도 아직 진정한 어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전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어머니는 그런 말씀을 하셨지. "미역국은 먹었니? 그치, 역시 못 먹었겠구나. 그렇지만 살다 보면 그런 날이 더 많을 거야." 이 말을 위로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상상하지 못했다만 무언가를 더 굳세고 견고하게 버틸 수 있다는 생각 하나는 확고해졌다.


 난 나라는 사람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에 뒤따라오는 것이 나는 충분히 내 나이대 사람들에 비해 성숙하거나 깊은 사람일 것이고, 내 주변에는 내 삶에 이정표를 제시하거나,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뿐이라는 확실한 자신감. 이러한 감정들은 내가 외부 공간에 모르는 누군가와 생활하더라도 마음만은 그들과 함께 있다고 느껴지게 해 준다.


 나처럼 무관 후보생으로 858기에 입대한 이들이 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들에게 정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친해지지 얼마 안 된 타인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에. 예비단에 머물며 그들에게 미리 생일 축하를 받았기에 오늘 진정한 생일을 덜 외롭게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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