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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y docu diary

일지를 시작하며.

by 정보람 Jeongborambo

아빠와 산에 대한 궁금증을 다큐멘터리로 찍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어언 2년이 넘게 하고 있었다. 한 문장의 질문에서 시작된 작은 기획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영상에 찍히기만 했던 나는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 줄 곧 이어졌다. 하지만 찍어야만 하고 탐구하고 싶었다. 이 질문을 어물쩍 넘겨버린다면, 몇 년간 내게 깃발 꽂은 슬픔이 관 뚜껑을 덮고 들어갈 때까지 숨처럼 붙어 코를 간지럽힐 것 같았다.

그럴 순 없지. 한숨이라도 밝은, 가벼운 숨을 들이마실 마음을 먹기로 했다.


막막했지만 환경이 좋아(?)서 오고 가며 영화인들을 마주칠 때마다 조금씩 조언을 구했다. 나눠 받은 많은 조언들 중에서도 제일이었던 건 역시나, [그냥. 일단. 찍어.]였다. 그렇다, 준비고 뭐고 일단 찍어야 한다.

그럼에도 2년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주저했던 이유를 간략히 고백하고 기록을 시작해보려 한다.


이 작업은 이리저리 궁리해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 주변 사람들에게 한 두 번은 인터뷰 같은 게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집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카메라를 설치하고 오디션을 위한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줄 곧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나를 볼 엄마가 던질 질문에 솔직히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오디션 준비하는 거냐?", "아니?", "그럼 카메라 켜두고 뭐 하는 거냐?", "다큐 찍어.", "뭔 다큐?", "아빠 다큐.", "뭐?" 같은 전개로 흘러갈 대화임이 뻔하다. 비겁하게 엄마의 동의가 필요 없을 수도 있지 않나, 같은 생각도 해보았다. 오로지 '나의' 아빠인 포지션에서 시작한다면 어떨까.

'엄마의' 남편, '동생의' 아빠, 이기도 한 '나의' 아빠, '우리 아빠'.

아무리 여러 가지 비겁한 생각을 해 보아도 결과는 같았다. 엄마에게는 말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계획을 밝힌다면 어떤 이유로든 엄마의 마음이 긁힐 것 같다는 은은한 불안감이 들었다. 거절보다 더 큰 거절. 어떠한 생채기라도 난다면, 그렇게 되어버린다면, 이 시도는 깡패가 되는 것이다. 별 것 아니지만, 이게 그동안 주저하고 말았던 이유이다.


왜 이런 감각이 들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우리는 아빠가 떠났다는 단순한 이유로 부둥켜 안아 울지 않았다. 남겨지고 말았다는 감상도 없다. 사람은 영원하지 않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저 각자의 괴로움은 겨드랑이에 낀 채, 공동의 슬픔인 그의 독특하고 재미났던 구석을 요리조리 놀려도 보고, 재잘대며 우리 가족 특유의 방식으로 둔갑시켜 왔다. 하지만 역시 같은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일까,를 지금에 와서야 생각할 뿐이다.

사실은 내가 그냥 쪼다일 뿐이라서가 크게 한몫했다. 마주하기란 얼마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가 말이다.


어영부영 2년의 시간을 넘어 아빠가 떠난 지는 꼭 3년이 되던 때였다. 설이 다가오고 있었고, 크리스마스 연말부터 새해까지 나는 어쩌다 주 6일 풀타임 알바를 하며 노화의 돌풍 속에 뼈를 갈고 있었다. 2024년은 1월에 기일을 챙겼기 때문에, 같은 해 연말에 기일이 또 있을 거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음력, 양력을 아무리 설명해 줘도 이해 못 하는 동생이 해가 바뀌고 여전히 이해 못 한 이유로 엄마와 내게 물어볼 때조차, 우리는 역시 뭘 모르는 놈이로군, 하며 핀잔을 줬다.

그렇게 알았다. 아빠의 기일을 지나친 것을. 윤달을 잊었다는 것을. 바람 타고 밥 먹으러 왔을 아빠는 고개를 갸웃했을까 섭섭해했을까, 멍청한 놈들, 하고 혀를 끌끌 찼을까, 밥 차려주기를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알 수 없지만 '완전히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는 자각이 우리 모두를 어떤 선잠에서 깨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은 하루에도 12번은 넘게 매 순간 하는데, 마음속에서는 마치 슬라임을 만지듯 계속 그 마음을 주무르는데, 손에서 놓지 않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실속은 전혀 없는 마음들이라 할 수 있겠다. 정작 중요한 건, 정작 중요한 건.


놀라움에서 우릴 구해준 건 몇 주 뒤의 설날이었다. 설이 있으니 산소에 한번 다녀오는 것으로 잊은 기일을 퉁쳐보기로 했다. 그러기로 하고 난 뒤부터 황당해서 웃음이 났다. 그렇게나 앓다 죽을 것 같던 괴로움이 정작 아무런 무거움도 없어 보였다. 눈덮개로 옆 시야를 가린 채 달리는 말처럼 결국에는 내 삶만 보고 걸어가고 있는 주제에, 이미 지나간 곳들은 돌아보지도 않고 있으면서. 그렇게 어느새 열심히 살아가고나 있으면서 말이다.

조금의 반성하는 마음이야 들었지만 어쩐지 이 황당함이 주는 웃음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아빠의 비석에 대고 "아, 쏘리~~"라고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쏘리라 말하던 그날 돌아오는 길에 눈이 왔다가 비가 왔다가 했던 거 같다. 운전을 하며 엄마와 아무런 말을 주고받다가 어느 순간 '어? 지금이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반응은 역시나 "뭐??"여서, 지난 시간 시뮬레이션만 돌리던 대답을 주절주절거렸다. 그러다가도 문득 2년여를 주저해 왔던 마음에 잠시 주춤하게 됐는데, 의외로 엄마는 걱정과 달리 긁히지 않고 단순하게 대답했다.

"에이! 하지 마!"

거절,...... 을 말로 할 줄은 몰랐어서 나야말로 반문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왜?"

"아빠가 완전 쪽팔리다고 할 거야. 아빠 성격 알잖아."

? 전혀 다른 예측이었다. 오히려 내심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아빠 은근 관종이라서 괜찮을 걸?"

"그거 사진을 뭐 하러 다운로드 해, 내버려두지."

"사라진다니까?"

그 후로 어쩌고 저쩌고 몇 분 더 갑론을박을 나누고 깨달았다. 그를 향한 어떤 행동들이 슬픔을 유발하지 않는다면 엄마의 대답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고. 정말 나만을 위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예상 속 엄마가 아니라 현실의 엄마 덕분에 나는 드디어 이 다큐를 찍을 힘이 생겼다. 아빠의 반응에 대해 서로 다르게 예상한 건 좀 의외였지만, 어쨌든 와라락 내 마음대로 해버려도 괜찮겠다는 안도감이 생겼다.

"어휴, 맘대로 해라."

"오키~!"



히히. 마음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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