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해석
밤늦게 길을 거니는 일이 잦아졌다.
어둠이 하늘을 감싸고 작은 빛들은 아스라이 떠올라 발 끝에 번진 나의 검은 그림자를 비춘다.
불빛에 비춘 유형의 것들을 바라보며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떠올린다. 고요함이 주는 공기가 낯설어 주변에 귀를 기울인다. 침묵은 나의 헐벗은 마음을 정직하게 보게 한다. 무엇을 위하고 향하며 살아가고 있나.
원하는 것들에 대한 나의 바람은 욕심일 수도 있겠다. 동시에 서러워진다.
과연 나는 너에게 서운함을 느껴도 되는 자격이 있을까 되물으며 그 물음의 화살을 나에게 겨냥한다.
억울함이 왈칵 쏟아진다. 동시에 서러워진다. 들키고 싶지 않았던 자존심의 순간이 그것들을 영원히 밀어낼 거란 것을 내가 원했던 것들의 잔상이 더욱이 희미해지는 지금 나는 걷고 또 걷는다.
지나간 기억들이 머문 자리들은 왜곡된다. 또 모르는 일이다. 언제나 당연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최선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향해 달려올
때
숨을 크게 쉬어본다. 그리고 내쉰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다. 움직인다. 움직이다 멈춘다. 그리고 머문다.
버거움이 한꺼번에 밀려올 때, 동시에 나의 나약함의 역치가 삶으로부터 가까워질 때 이따금 그녀 생각을 한다.
내 나이의 그녀는 맞닿아있는 것들에 대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을 인내하고 감내했어야만 했나.
걷는 도중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늘 그렇듯 어디야? 밥은 먹었어? 묻는다. 요 근래 마음과 몸에 기력이 없어진 나에게 전화를 거는 횟수가 많아진 그녀다. 덕분에 통화목록에는 きょうこ가 가득하다.
쿄코는 그녀를 부르는 나의 애칭이다. 그녀의 이름은 한국어로 경자. 일본어로는 쿄코-라고 열한 살의 나에게 말해줬던 그때로부터 벌써 20년이 흘렀다.
매일 밤 성장통으로 무릎이 아팠던 그 아이는 벽에 걸어놨던 자그마한 타원형의 거울을 고개 숙여 바라볼 만큼 커버린 어느 날 꿈을 찾겠다며 그녀의 곁을 떠났다.
그렇게 커 보였던 그녀였는데 지금은 어찌나 아담한지 두 팔 벌려 안으면 품에 쏙 들어올 정도다.
그녀가 요새 꿈을 꾼다.
아주 기분 좋은 꿈이라며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자신도 믿지 않는다고 첨언하며 일말의 기대감과 함께 얘기를 들려준다.
드물게 오디션을 보는 나에게 그녀는 덧붙여 결과 대신에 진행을 묻는다. 잘 되어가고 있지?
요즘의 나는 아득해진 꿈에 대한 계속되는 의심으로 가득 찼는데
그녀는 아닌가 보다.
참 이상하게도, 하필이면, 오늘 그녀의 꿈이 나를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