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감에 대하여
나를 감싸고 있는 것들에 대한 고찰
연기를 시작하고 초자아. 즉, “ego”에 대해 의식적이게 된 나는 톨레의 저서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읽으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치기도, 주책맞게 꺼억꺼억 거리며 눈물 한 바가지를 쏟기도 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내가 아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우리는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보면서 ‘나’라고 정의 내린다. 물론 아직까지 나도 그러하다.
에고는 언제나 형상과 동일화되고, 어떤 형상에서든 자기 자신을 찾으며, 그럼으로써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더 근본적인 것들은 의식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 형태들이다.
에고는 오랫동안 조건 지어진 마음의 방식이다. 그것은 진정한 내가 아니다.
내적으로 항복할 때, 저항하지 않을 때 의식의 새로운 차원이 열린다.
명상을 할 때에도 수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들어온다.
어제 내가 그에게 건넸던 말. 용기 내지 못했던 아쉬움에 대한 약간의 자책. 예민함으로 포장된 신경질적인 행동들. 물론 각자가 다르겠지만 나로서는 긍정적인 훗날의 다짐보다는 후회스러운 들춤의 것들이 지배적이다.
미간이 좁혀지고 양 어금니 사이의 긴장이 맴돈다.
하지만 이내 이것들을 받아들이고 그저 흘려보낸다. 현재 가부좌의 형태에서 무릎에 손등을 올리고 눈을 지그시 감은 나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다.
얼굴을 스치는 여름날의 습하고 따뜻한 바람을 느낀다. 의식을 얼굴에서부터 목 그리고 마침내 발가락 끝까지 붙여본다. 가끔은 미친 듯이 눈물이 흐를 때도, 이따금씩은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감각들이 정말 낯설게도 느껴질 때도 있다.
스콜성 장마가 지속되는 요즘, 비를 맞는 것이 즐겁다. 사실 우산을 잘 들고 다니지 않는 습관이 길러준 나의 해방감이다. 이따금씩 흠뻑 장대비에 젖곤 했던 나는 우울감에 휩싸인 근 몇 년 간 비가 내리는 것을 텅 빈 눈으로 그저 바라보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신기하게도 동력이 조금씩 생겨나는 시기임에 분명한 점은 비를 맞는다는 것이다.
비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한 방울 두 방울 들리기 시작하고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가 이때다 싶어서 느지막이 비를 맞으며 걸었다. 이유 모를 해방감이 느껴져 더욱더 천천히 걸었다.
에고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에고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알아차림’과 ‘에고’는 공존할 수 없다.
‘알아차림’은 ‘현재’의 ‘순간’ 속에 숨겨져 있는 힘이다.
나는 자유로움을 갈망한다.
자유로움과 갈망이 공존하는 것에 어폐가 있다. 자유로움을 소유하려 하려는 나의 마음 때문이다.
소유하려 하는 마음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가끔 버겁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내가 선택하고 취한 것들이다.
완연한 나의 카르마다.
조금씩 덜어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 요즘이다. 그저 존재하기 위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