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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 잡문집

대충 살자

by 깡미

지난 주말 강원도 자락의 해변에 다녀온 후로 발등이 따갑다.

발등만 따가운 것이 아니라, 발목에서 3.8선 마냥 뚝 끊긴 벌게진 피부가 도드라져 보인다.

슬리퍼 모양대로 타버린 발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발가락 양말까지 달린 래시가드가 있는지 상품검색을 해보고는 제풀에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상상하자니 꽤 기괴한 수영복 차림새.

결국 쿠팡앱을 열어 손가락 운동을 하게 된 건, 그새 발이 자란 오월이에게 내 아쿠아 슈즈를 넘겨준 까닭이었다.

별생각 없이 작년에 입었던 래시가드와 아쿠아슈즈를 챙겨 넣고 왔더니, 들어가지 않는 발을 기어이 구겨 넣어 곧 터져버릴 것 같은 시착 현장을 목격하고는 고이 신발을 내어준 숭고한 모성애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엄만 괜찮아 상관없어 슬리퍼 신고 있으면 돼."


내 발이야 뭘 신고 있든 우선은 아이들의 물놀이가 시급한 순간. 얕은 물가를 오가며 보말을 잡아 채집통에 모아놓고, 맨손으로 게를 잡다가, 집게를 끊고 도망가는 게를 다시 잡겠다는 일념으로 바위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떠내려가는 튜브를 잡으러 바다수영도 하다가.. 그러면서 해변에서의 하루가 저물었다.





화상이 아닌가 하고 밀룽밀룽해진 발등을 가만히 만져보다가 다시 손가락 운동을 시작했다. 발 화상, 햇볕 그을림 몇 가지 키워드를 검색해 보다가 워터밤의 여신은 발가락 사이사이에도 선크림을 바른다는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물에 젖어도 완벽한 비주얼을 유지하는 그녀의 프로페셔널한 모습과, 내가 맞닥뜨린 발의 꼴이 슬쩍 우스워지려는 찰나. 그 순간을 비껴가지 않고 어깨를 들먹거리며 키들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발목을 한번 더 훑어보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려본다.

대충 살자.

누가 내 발가락사이를 보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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