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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빵 Jul 27. 2024

종기가 났어요

종기를 기다리며


'밑에 뭐가 났어요'

'종기가 났어요'  

'터졌어요'


환자들은 한 번씩 종기를 데려오곤 한다


옷을 다 입은 환자들의 외관만 봤을 때는 종기가 어떤 놈일지 알 수 없지만 간혹 어그적 어그적 걸어오는 분들을 보면 이번엔 보통이 아니겠구나 하는 예상을 하고 처치실 안으로 들어간다


작은 종기들은 소독을 하고 간단히 바늘을 찌르고 짜 주면 금방 끝이 난다


물론 환자의 마음은 간단하지 않은 듯하다


한 번씩 종기를 짤 때면 내가 소시오패스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종기를 다 짜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무자비하게 짜내다 보면 환자들의 비명은 배경음악처럼 저 멀리 어딘가에서 들려온다


'아이고 아프시죠? 조금만 참으세요. 거의 다 됐습니다.'


이런 말을 할 때 너무나 마음에 없는 말처럼 한 것 같아 뜨끔할 때도 있다


처음에는 약을 주고 먹고 기다려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약도 약이지만 종기 이놈들은 확실히 짜버려야 빨리 낫는 것 같다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기둥을 뽑아버리고 싶다


때대로 단순한 종기가 아닌 막에 둘러싸인 혹을 떼낼 때도 있다

국소 마취를 하고 조금씩 조금씩 손으로, 기구로 벗겨내어  낭종의 막까지 떼버렸을 때의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직업을 잘 골랐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직업만족도 최상이랄까


환자분은 저 의사가 왜 저렇게 기분이 좋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막까지 다 벗겨냈으니 재발은 안 하실 겁니다!

단호박같이 말할 수 있을 때 의사로서 아주 보람까지 느낀다


다음에도 이번 혹만 같아라! 하고 생각하며

다음 종기를 기다린다


-종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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